누가복음(완료)
눅12:13-15(24.01.18.목)
은혜바라기
2024. 1. 18. 08:37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3절을 읽게 되면, 이런 미련한 놈~~ 예수님한테 그런 요구나 하다니~~ 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3절에 나온 미련한 자는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이 땅 인본주의에 묶여 살게 됩니다. 아무리 선택받은 자라도 옛 자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그런 비참한 나의 상태를 보고, 느끼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13절의 사람이 하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경제적인 부분, 그중에서도 매우 민감한 부분인 유산을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이것은 경제뿐 아니라 권력, 인기, 건강, 가족, 인간관계 등등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벗어던질 수 없는 모든 굴레를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인본주의 굴레의 문제를 예수님께 늘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부하시죠. 예수님께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기도의 검증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 마지막을 그냥 ‘주문’과 같이 외우고 끝내죠.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이라면, 즉 그들이 예수님의 지체라면, 즉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기도하셨을까?라고 기도를 멈추고 내가 한 기도를 복음에 빗대어 많은 시간 동안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 자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죠. 그런 자들만이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기도할지, 아닐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온전한 기도는 선택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본주의 인생에 단 1도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해 하고 관심 있어하는 바는 모두 여러분의 옛 자아의 궁금증이죠. 예수님이 관심 있어하는 것은 오직 여러분의 구원입니다. 즉, 여러분의 진짜 생명에만 관심이 있으시죠.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내일'에 대한 고민 조차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여기서 보면,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했죠. 내일이 주어입니다. 즉,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염려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염려를 하실리 없으시죠. 그래서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 모든 것이 진행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내일'는 우리의 남은 인생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마지막을 보면,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라고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탐심’이 바로 인본주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참 생명, 즉 구원은 인본주의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