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3:15-16(24.07.29.월)

은혜바라기 2024. 7. 29. 08:04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반복 서론 : 일곱 교회는 일곱 개의 각기 다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7이라는 숫자는 복음에서 ‘완전함’을 의미하므로 ‘완전하게 구원받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즉, 일곱 교회는 ‘구원받은 나’입니다. 고로 각각의 교회마다 칭찬과 책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히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이 방향성을 잃지 마시고 묵상하세요. ))

 복음의 핵심은 ‘죄와의 분리’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온통 죄 뿐이죠.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을 인본주의에서 분리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분리하는 것을 ‘심판’이라고도 부르죠.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이렇게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이스라엘이 애굽(인본주의)에서 어린 양의 피(예수님의 십자가)로 애굽과 분리되어 광야로 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너의 행위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라는 의미는 완전하게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지 못한 상태의 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본주의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하다 못해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신도 만들어서 제사를 지냅니다. 현대 시대 우리는 교회를 짓고, 시간을 정해,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 시간에 기도, 찬양, 헌금을 드리면서 ‘나는 구원받았다.’ 라고 외치죠. 

 이런 종교행위 중에는 이것이 뜨거운 것이지, 차가운 것인지, 예수님의 공로인지, 나의 공로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지 말자~~  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선택받은 자라도 반드시 이런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제부터 미직지근하지 말아야겠다~~ 뜨겁거나 차갑게 살아야겠다~~ 라고 각오를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진정한 요지는 선택받은 자라도 모두 인본주의 종교활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토하여 내쳐져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시면 그들은 다시 복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작각하면서 나는 절대 스스로 뜨겁거나 차가운 분리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만 소망하게 될 때 비로서 뜨거운 복음(예수님의 공로)과 차가운 인본주의(나의 옛 자아)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죠.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종종 이렇게 구원받은 증거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스스로 이것을 절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말고 매우 열심히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차가운 것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도 말이 안 되죠. 모순에 빠져버립니다. 성경은 항상 ‘행위’로 해석하면 결국 모순에 빠집니다. 

 오늘 말씀은 인본주의라는 죄와 분리가 확실히 되지 못하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린다’는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분리가 핵심이죠. 죄에 묶인 나의 옛 자아와 복음을 알아듣게 된 나의 거듭난 자아의 이야기입니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