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진행중)

로마서14:1-3(26.10.02.금)

은혜바라기 2026. 10. 2. 09:33

로마서14:1-3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1절을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고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나옵니다.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믿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믿음이 사라진 존재이며 스스로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가서 ‘나는 이제부터 예수님을 열심히 믿을거야~~’ 라고 맹세하고 그 맹세를 지키려고 마음을 다잡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죠. 

 “마17:20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님만 가지고 있는 진리의 고유 속성입니다. 어렵죠? 쉽게 예를 들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사과를 흰 보자기로 덮은 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배라고 설교하거나 감이라고 설교하면서 믿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믿음이라는 감정을 의지로 굳게 세웁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믿음의 실체입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은 어떤 선택받은 자에게 그 흰 보자기 안의 사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사실(진리)를 확인한 사람은 배와 감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의 손을 잡아서 십자가에서 생긴 자신의 상처를 만지게 한 것과 같죠. 고로 참 믿음의 정의는 우리의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가 전달되는 과정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고로 10분 후면 없어질 감정적 믿음에 의지하지 마시고 오직 전달받은 진리만 묵상하면 됩니다. 

 

 결론 : 예수님께서 복음의 진리를 선택받은 자들에게 전달하면 그들도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는데 이 과정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고로 참 믿음의 출처는 예수님 뿐이고 ‘믿음의 분량’ 이라는 말도 '복음을 전달 받는 단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 이라고 분명하게 나오죠. 믿음은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얼마나 보여주셨는지에 따른 그 분량에 따라 각각 묵상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복음을 알게 되는 과정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높고 낮음이 아니라 확장의 차이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여리고성과 아이성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마친 후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첫 전투가 여리고성이었고 둘째 전투가 아이성이었죠. 그런데 이 두 전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오늘 본문 1절도 이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반드시 1차적으로는 종교인으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이후 선택받은 자들은 종교 안에서 모순을 깨닫고 갈등하다가 주님의 선택에 의해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됩니다. 고로 종교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종교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을 불쌍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죠.   

 슬프게도 종교인의 역할을 하는 목사도 필요하고 행정을 잘하는 목사도 필요합니다. 심지어 바벨론 역할을 하는 이단목사조차 필요합니다. 초코파이를 먹으러 교회에 왔다가 기독교 종교인이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용하셔서 그 중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 복음을 전달하고 그들을 구원시키시죠. 물론 이 숫자는 매우 적은 소수입니다. 

 “눅13:23-24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실제로 이 구절에서 말하는 ‘좁은 문’의 정체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오직 구원받는 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오직 그 분만 마지막 좁은 문인 십자가를 통과하셨죠. 인간은 그 마지막 좁은 문 앞에서 모두 도망갑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다 그랬죠.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은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1세대 60만명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죄인으로 들통 나 죽습니다. 오직 여호수아만 가나안에 들어가죠. 여호수아의 헬라어 표기가 ‘예수’입니다. 이때 여호수아에게 유일하게 동조한 갈렙만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갈렙은 예수님과 한 몸이 된 선택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정리해보죠.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헌금을 잘 내는 사람이 헌금을 못하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거나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저급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구절은 종교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정체성과 복음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자라면 아직 종교의 테두리에 머물면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자들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반드시 3가지 삶의 단계를 거칩니다. 첫째 애굽 포로 단계입니다. 인본주의 가치를 쫓는 단계죠. 둘째 광야 생활 단계입니다. 인본주의 가치를 상실하고 애통하는 단계입니다. 이때는 율법과 행위에 의해 점점 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세째 가나안 정복 단계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확실이 알게 되어 내 안에 남은 인본주의 영토를 복음의 진리로 확장하는 단계입니다. 

 가나안의 영토확장, 즉 복음의 영토 확장 단계에 있는 자들은 애굽의 포로 단계에 있는 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광야 생활 단계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면 됩니다. 그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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