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주일성수,안식일

(묵상특집)주일성주,안식일에 대하여..

은혜바라기 2021. 9. 23. 08:43

 주일성수란 주일을 성스럽게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복음의 방향에서 바라보면 완벽하게 ‘누룩’이 섞여 있는 말입니다. 오직 성스러운 것은 예수님 한 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특정한 날에 ‘누룩’을 섞어 기독교 복음을 훼손한 가장 좋은 예가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례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지정한 AD 313년 밀라노 칙령 시대에 만든 것이죠. 로마가 이전에 믿고 있던 태양신의 탄생일과 동일한 날짜를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성스러운 날’로 만든 것이죠. 정치적으로 만든 인간의 행사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을까요? 하나님은 역사에서 이날을 감추었습니다. 왜냐구요? 그날을 지정해서 ‘성스러운 날’로 정할 것을 피하신 것이죠.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를 '성모'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성모 마리아에게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합니다. 심지어 성모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성경은 절대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인본주의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즉, 어떤 신에게 일년 중 어떤 ‘날’이라도 바쳐서 나의 지극정성을 보태면 ‘잘 살기’가 된다는 믿음이죠. 모든 인본주의 종교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크리스마스는 여지없이 가장 타락한 날이 되고 말죠. 교회 안에서도 ‘복음’ 보다는 행사와 프로그램만 넘쳐납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을 끄집어 내어 묵상하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아시겠죠?  이런 관점으로 주일성수에 대하여 좀 더 깊은 묵상을 해보죠. 주일성수에 대한 묵상을 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관한 묵상을 먼저 해보죠. 

 복음으로 바라보는 안식일은 과연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이 되는 날 ‘안식’하셨죠. 그리고 우리에게 이 안식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죠. 물론 1차적인 의미의 안식이란 ‘쉼’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쉼’이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안식’의 진정한 본질을 무엇일까요? 

 ‘안식’의 진정한 개념은 ‘우리가 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6일 동안 만든 천지창조는 너무나 완벽하여 그 어떤 누구도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입니다. 즉, ‘안식’은 하나님의 ‘완벽한 완성’에 대한 ‘인정’입니다. 재미있는 예로 설명해 드리면, 성냥으로 100층 탑을 쌓고 꼭대기에 마지막 한 개의 성냥개피를 올려 놓으면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 대지마! 다 했다.”라는 장면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나도 해볼까? 내가 더 높여 볼까?” 행동하죠. 그것이 선악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 탑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 전부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6일 동안 만드신 천지창조의 정체는 무엇인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지으시고 “다 했다”라고 하신 것일까? 물론 천지창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전부(자연, 법칙과 질서, 역사, 인생)를 가리키죠. 

 그러나 ‘천지창조’는 그 자체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망할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죠.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진리관계가 모순으로 충돌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망할 것을 창조하신다???

 하지만 천지창조가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한시적인 ‘시간과 공간’이라면 이 모순이 완벽하게 풀립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음(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공간과 시간일 뿐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다시 ‘안식’을 설명해보죠. 그러므로 안식이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즉,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를 설명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천지창조의 계획이 완벽하여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천지창조가 ‘복음(사랑)’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죠. 복음이란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으로 죽었는데 이런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모든 지위를 버리시고 인자(나)로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로 나의 죄를 대신하시고 모든 율법을 이루셨죠. 그리고 이것을 알게 된 자 즉, 이것을 믿게 된 자들은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서 자기공로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천국이라는 개념도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입니다.

 이런 복음의 시각으로 안식일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면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만든 모든 구원의 메카니즘이 예수님으로 인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그래서 네가 할 일은 전혀 없다.(쉼) 그 이유는 내가 계획한 ’너에 대한 구원‘은 완벽하게 예수님 홀로 이룰 것이며 그것에 네가 할 일은 단 1도 없다.(안식)’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최종적 정의입니다 

 이제 안식 혹은 안식일에 대한 복음적 개념이 확실히 잡혔죠? 쉬는 날. 노는 날. 성스러운 날...... 모두 아닙니다. 이 날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계획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아직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 이 안식일(정확하게는 안식일의 의미)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안식의 의미를 성경이 완성되는 시점까지 훼손하지 않고 끌고 가야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규례가 엄정하게 정해진 것이였죠. 원래는 이 안식일의 본질만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의 죄성(타락)은 반듯이 본질을 훼손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형이라도 완벽하게 지켜서 후대에 전달시켜 그 본질을 품고 가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죠. 그 때의 안식일의 개념을 지금의 주일의 개념으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데 그렇다면 안식일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주일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가?  복음의 방향에서 본 정답은 절대 지켜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절대 지켜져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왜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나올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단 한 글자도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안식일을 목숨걸고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의 정체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죠. 이 안식일의 진정한 정체는 ‘일요일’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설명하려는 도구로써 천지창조를 하셨고 그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 홀로 다 이루셨죠. 더 이상 그 어떤 누구도 구원에 1도 더 할 필요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을 안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 방향에서 설명하셨기 때문에 ‘안식’이라고 불려진 것 뿐입니다. 만약 안식을 하나님 방향에서 쓰셨다면 ‘완성’이라고 쓰셨을 것이구요. 

 결국 ‘안식일’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완벽한 표지판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표지판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죠. 즉 안식일의 실체인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의 품, 예수님의 지체,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킨다’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인본주의 종교(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을 지켜라.’를 일요일로 바꾸어서 '특정 요일'을 지키게 하죠. 그것도 모자라 그 일요일을 ‘성스러운 날’로 여기게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성스러운 날 감히 누가 돈을 쓰냐?’며 각종 규제까지 달아 놓았죠. 이제 교회에서는 예수님보다 주일성수(교회가는 것)가 더 큰 의미가 되었죠. 일요일에 교회를 안 가면 마음속에 있는 부담감이 팽팽해지죠. 그런데 복음을 듣지 못하는 것에는 전혀 부담감이 없습니다. 


 불변의 진리는 우리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일'의 진정한 정체는 일요일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시간 예수님의 품에 머물러야 합니다. 나는 쉬고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