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4:10-16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오늘 말씀도 종교인들은 ‘남을 비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귀결 짓죠. 그래서 교인들은 교회에서 가능한 남을 비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남을 비판하는 자를 보면 마음속으로 그 자를 비판합니다. 복음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다 모순이 생깁니다. 그리고 종교는 행위의 꼭대기에 서 있죠.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남을 비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비판하는 자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면 그 자는 자신이 옳다는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자 죽인 자라는 것을 선언하였죠. 그래서 오늘 본문의 진짜 핵심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낱낱이 까발려지면 반드시 죄인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11-12절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혀가 자백을 하고 자기 일을 직고한다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복음의 시각으로는 형제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아니 좀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복음의 시각으로 하는 비판은 그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복음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 형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형제라는 객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전체를 하나의 사람(아담)으로 보고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형제의 비판은 곧 나 자신을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후 13절에 보면 ‘그런즉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비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비판을 하는 마음 속 기준, 즉 ‘행위 기준, 율법 기준’ 자체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을 율법에서 예수님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후 13절 후반 ‘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말라’에서 ‘부딪칠 것, 거칠 것’은 율법과 행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형제 앞에 간음하지 말라~~ 는 율법을 던져 놓고 그 형제가 지나가는 여자를 힐끔 힐끔 보면 그 행위를 율법과 행위로 판단하여 비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택받은 자들은 이미 종교와 율법에서 벗어난 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기준으로, 예수님 은혜로 다시 설명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진짜 만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셨다면 그 다음 14절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14절 ‘주 예수 안에서 확신하는데 절대 속된 것은 없다. 속되게 여기므로 속된 것이다.’ 즉, 인간이 율법과 행위 그리고 종교와 제도를 만들어서 스스로 속되게 만든다는 것이죠. 십일조라는 거친 것을 종교 안에 만들어서 스스로 그것에 부딪치고 그 행위의 결과로 서로서로 판단합니다. 심지어 내가 나를 판단하여 자괴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이것은 완벽한 종교적 가스라이팅입니다. 이 상태까지 오면 ‘예수님의 은혜’는 묵상하기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말씀이 15절입니다. ‘음식으로 네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 고 나오죠. 그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신앙행위가 ‘제사음식’ 이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예를 든 것이지만 바울이 현대에 와서 로마서를 썼다면 1순위는 ‘십일조’였을 것입니다. 십일조라는 단어를 15절에 대입하여 다시 써볼까요?
“현대적 로마서 14:15 만일 십일조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목사)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가 십일조로 망하게 하지 말라“
이후 나오는 16절이 결론입니다.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여기서 선한 것이란 ‘복음’입니다. 분명하게 인식하셔야 할 것은 ‘선’은 오직 ‘복음’ 이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란 예수님의 이야기죠.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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