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초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일까요?
사탄(귀신)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일까요? 그러니 너희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반드시 믿어야 한다~~ 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탄의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금지하신 것입니다.
복잡하죠?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을 십자가 사역을 뺀 상태의 예수님으로 알기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으로 섬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신으로만 섬기는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죄인이 된 인간이 만든 인본주의 산물이 ‘종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들이 만든 종교의 신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전적타락한 인간이 절대로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 종교를 허락한 후 그 종교를 도구로 사용하여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제사의 주된 목적은 그 제사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린다고 해도 계속되는 죄를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고민하게 만든 것이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라는 흠없는 십자가 제물의 필요성을 반복, 강조한 것입니다.
불교라는 종교에 가서 부처라는 신에게 자기의 소원을 비는 것과 기독교라는 종교에 가서 예수님이라는 신에게 자기의 소원을 비는 것은 똑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신의 자리에 놓고 절대 충성’하는 관계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베드로는 ‘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죠.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는 나와 상관없는 자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인본주의 논리상 어떻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깁니까?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야지~~ 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관계에 머물고 있는 자들의 인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오직 십자가의 관계로만 맺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더러운 죄를 닦아주시는 분으로 남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종교적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지금이라도 예수님께서는 단 10분 만에 80억명이나 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단번에 믿게 하실 수 도 있습니다. 한 날 한 시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걷어치우고 하늘에서 큰 형상으로 모두에게 보이신 후 산을 옮기고 태양과 달과 별의 위치를 바꾸는 기적을 보이시면서 '나를 신으로 믿어라~~'라고 보여주시면 됩니다. 이런 방법은 이 세상을 만드시 분에게는 너무나 쉬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실까요? 왜 귀신들이 모조리 예수님 앞에 무릎 끊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를 선언하도록 놔두시지 않을까요? 왜 이런 쉬운 방법은 놔두시고 죄인들에게 살과 피를 제공하시는 그들의 먹이로 오셔서 십자가 고난의 행보를 하셨을까요?
인본주의적 생각, 인본주의적 종교 시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본주의 종교에서 행하듯 예수님이라는 신께 무릎 끊고 두 손 들어 기도하고 봉사, 헌금으로 충성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바라는 것은 그 분의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알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배신함’입니다. 살인, 간음, 절도, 거짓말과 같은 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 증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인본주의라는 죄를 선택했습니다. 아직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죠. 끔찍하고 비참한 나의 상태를 확인함과 동시에 절대 스스로 이것을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 예수님만을 소망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덮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나를 보면 아직도 죄만 존재할 뿐입니다. 나의 죄를 가리신 예수님의 피와 살,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 숨어야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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