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직전 묵상에서 보면, 주의 사자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을 할 아들 요한을 잉태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18절, 사가랴의 대답은(조금 쉽게 의역하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어!! 나와 내 부인은 애를 낳기 힘들 정도로 늙었다~~’라고 반문하죠. 이후 19절에서 천사는 ‘나는 천사 가브리엘이고 이 좋은 소식을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이 19절은 천사가 사가랴을 설득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19절도 하나님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굳이 넣으신 구절입니다. 19절에 나온 ‘좋은 소식(good news)’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주어지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복음을 보내는 방법'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굳이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신비주의적 이단 사상 때문에 가능한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를 성경에 잘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인간은 심지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 똥조차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매우 강력한 영적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 천사의 이름까지 드러내죠. 그 이유는 바로 ‘복음은 영적인 하늘의 방향성에서 정확하게 그것을 받을 사람에게만 실수 없이 전하여진다’는 복음의 속성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종교’죠. 참 복음은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23년 1월 1일 이런 식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전달하는 시기를 시간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시간으로 확정하라면 ‘태어나면서부터~~(혹은 태중에서)’라고 할 수 있죠.
선택받은 자들은 알게 모르게 성령께서 그들을 복음의 길로 계속 끌고 가게 됩니다. 고난, 고민, 갈등, 가치붕괴, 행복의 무의미 등등 계속 여러 환경을 통해 이끌고 가시죠. 선택받은 자들에게 종교, 특히 기독교는 그 환경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아가게 되죠. 어느 순간에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죽기 전까지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구원의 조건이 ‘우리가 복음을 완벽하게 알아야 함’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20절을 보면,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여 ‘말 못하는 자’가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한 사가랴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흡사 벌을 주는 모양으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양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서 설명하고 싶으신 것은 ‘좋은 소식’, 즉 ‘복음’을 믿지 못하는못 하는 자는 입으로 복음을 내어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말을 못하는 자가 되는 장면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조금 어렵죠?
천국은 온통 ‘복음’만 존재하는 곳입니다. 복음을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 복음은 오직 천국백성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오직 그 지역 사람만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할 있는 ‘예’가 바로 ‘방언’입니다. 방언은 그 지역 사람만 사용하고, 알아듣고, 말을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복음의 속성을 방언의 속성으로 매우 잘 설명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방언 에피소드’가 잠시 등장해서 복음의 속성을 설명한 것뿐입니다.
지금도 ‘랄랄라’ 하면서 방언이 있네 없네 하는 논쟁에 휘말리지 마세요. 현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한 영적 언어로써 방언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이런 방언은 타 종교, 무당, 심지어 아프리카 토속 신양에도 존재합니다. 이런 현상은 그냥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일반언어능력일 뿐입니다. 구간조가 사람의 말을 열심히 연습하면 어느 순간 사람의 말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죠.
복음(좋은 소식)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그 복음만 사용하는 천국에 속한 사람이 아니므로 ‘말을 못하는 자’로 표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사가랴를 이용하신 것이죠.
20절 후반절,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는 것도 1차적으로는 요한의 탄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의 복음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