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완료)

눅8:16-18(23.11.08.수)

은혜바라기 2023. 11. 8. 08:10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의 해석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초점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18절부터 해석을 해보죠.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종교’ 혹은 ‘교훈’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습니다. 말씀의 본질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죠. 그래서 말씀은 되새김 없이 그냥 듣게 되면 ‘종교행위’ 혹은 ‘교훈’으로만 들립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들은 것이 어떤 것인가?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늘 고민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에 상당히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 저도 어떠한 말씀이든지 일단 듣는 그 순간은 그 말씀이 ‘종교’와 ‘교훈’으로만 들립니다. 나를 기준으로 '행위'로 듣게 된다는 것이죠. 이후 그것을 성령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의 속성에 넣고 되새김질을 해보면 제가 처음 이해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방향을 가리키게 되죠.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령의 조명하심’이라고 합니다. 컴컴한 공간에 부러진 의자 다리가 있다고 해보죠. 이것을 손으로 더듬 더듬 만지면서 수 만 가지 물건을 상상하게 됩니다. 각자가 자기의 경험과 상상력에 의존해서 그것을 파악하고 스스로 믿게 되죠. 심지어 타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달받은 타인은 자신의 착각과 타인의 잘못된 정보전달이 합쳐져서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성령께서 오셔서 램프의 빛을 켜주죠. 그러면 그들은 그것이 부러진 의자 다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이렇게 알게 되는 것, 즉 이 ‘앎’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보통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자기 착각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 일뿐입니다. 참 믿음은 이런 노력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성령께서 조명하시면 짠~~ 하고 알게 되죠. 

 지금도 기도원에 가보면 계속 "믿습니다. 믿습니다. 병이 나을 것을 믿습니다. "를 수 천번 외치면서 마음의 각오를 다잡는 노력을 합니다. 목사들 조차 이것을 권하죠. 더불어 헌금까지 살짝 끼워 넣습니다. 내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하면서 헌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면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대부분 많은 헌금을 내는 방향에 서게 됩니다. 종교 사기죠.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면 고민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17절의 초점은 ‘드러남’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은 것’에 있죠. 물론 결과적으로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지만 이 글의 초첨은 그런 복음은 ‘숨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숨어 있다가 드러낸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다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굳이 숨어 있을 필요가 없죠. 그래서 이 17절의 초점은 ‘숨은 복음’에 있고 그 결론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드러낸다’입니다. 

 그래서 16절도 등불이 그릇이나 평상 아래 ‘숨어 있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이 등불의 목적은 그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빛은 복음 혹은 예수님이겠죠. 다시 한번 반복하면 이 등불의 목적과 결과는 그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반듯이 ‘그릇이나 평상’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그런데 그 등불은 원래 그렇게 감추어져 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등불은 선택받은 백성을 만나면 반듯이 빛을 드러낸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오늘 말씀의 초점을 이해하셨나요? 예수님께서 왜 계속 숨기고, 감추고, 덮고, 알리지 않는다는 전제를 장황하게 깔면서도 결론은 다 ‘드러낸다’라고 끌고 가시는지 이해하셨죠? 

 오늘 말씀도 복음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절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본문도 ‘ 착한 행실을 하여 타인에게 그것을 내보이도록 하자 ~~’ 라고 알아듣게 되죠. 그런데 그렇게 알아듣게 되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모순이죠. 이렇게 성경은 나를 기준으로 '행위'로 해석하면 계속 모순 속에 살게 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은 복음을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그것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 국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유기된 자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는 뜻이죠. 즉 오늘의 말씀과 정확히 똑같은 말씀입니다. 성경을 복음으로 읽게 되면 단 1%의 모순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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