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오늘 말씀을 대하기 전에 바리새인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하게 이해하시고 묵상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정체는 매우 훌륭한 종교인을 의미합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복음의 시각으로, 즉 형제에게 화만 내어도 살인이라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글로 보고 있는 우리는 바리새인을 악덕 업체 사장 혹은 악질 이단 종교 지도자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과 성전을 지켰으며 일주일에 몇 번씩 금식하고 그렇게 금식한 돈으로 고아와 과부를 돕는 자들이었죠.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지식하게 율법을 지켜냈습니다. 이렇게 해도 바리새인이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인턴 과정을 거치면서 검증의 검증 과정을 다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인격과 교육 과정을 거친 목사를 생각해도 그때의 바리새인의 수준에 못 미치죠.
즉, 바리새인의 정체성은 크리스천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훌륭한 신앙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자들이 가장 많았던 시대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 자들과 늘 대적하죠. 그러다가 결국 그 자들의 손에 잡혀 십자가에서 죽게 되죠. 이 역설적 상황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 배경 자체가 복음의 중요한 속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43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게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한다고 나오죠. 쉽게 말씀드리죠. 목사들은 교회의 높은 자리와 성도들에게 박수받고 싶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것에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단들 지도자들이나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만 해당되고 우리 교회 목사님은 안 그래~~ 라도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에게 박수치고 문안드리는 자들입니다.
방향성을 잘 잡으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 박, 김, 이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상 어떤 교회 지도자도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을 들으신 것입니다. 결국 바울도 이것을 목회 말년에 깨닫고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구나~~’라는 선언을 했죠.
심지어 44절을 보면, 이 자들은 평토장한 무덤 같다고 나옵니다. 그냥 죽은 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무의미, 무가치라는 뜻이죠. 즉, 3보다 작은 2 같은 존재도 아니고 2보다 작은 1 같은 존재도 아니고 그냥 ‘0’의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45절의 율법교사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우리를 모욕하고 있다.’라고 하죠. 똑같이 우리 교회 목사에게 ‘당신은 높은 자리를 탐해서 목사가 된 것이죠?’ 라고 말해보세요. 아마도 그 목사는 ‘당신은 나를 모욕하고 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똑같은 반응이죠? 그런데 복음을 보고 있는 목사라면, '맞습니다. 그에 더해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일 뿐입니다.'라고 답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필요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나에게서는 도저히 어떠한 희망도, 소망도 찾을 수가 없거든요. 왜 종교와 복음이 정 반대로 향하는지 아시겠나요? 종교는 기회의 그물일 뿐 절대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자들에게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라고 선언하시죠. 목사의 자리에서 ‘행위(율법)’를 설교하는 것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셨는데 느닷없이 율법학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성경이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죠. 성령님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시나요?
봉사해라, 기도해라, 예배해라, 헌금해라, 참석해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등등 전부 다 ‘짐’ 일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예수님 홀로 이루셨죠. 이미 완성되었죠. 그것을 복된 소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죠. 그래서 믿음은 외부에서 온 것일 뿐 나의 것이 아닙니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선을 의지하여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선택받은 자들은 성령께서 외부에서 가져와 가르쳐 준 '복음을 알게 됨'을 믿음으로 알게 되죠. 이렇게 '앎'이 믿음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 속성을 표현하여 '지혜' 혹은 '지식'으로도 많이 기록한 것입니다. 목사들이 하라고 하는 모든 것이 다 짐일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지셨죠? 그런데 똑같은 고민을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똑같이 물었죠.
요한복음6:28절은 보면 제자들이 "그럼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죠. 여기에 대답하신 예수님의 정답은??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모든 설교의 결론은 이 한 구절이 유일합니다. 이 요한복음 6장 29절은 항상 마음에 새기고 다니세요.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다 하셨고 다 이루셨기 때문이죠. 그래도 꼭 할 일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 뿐입니다.(사실 이것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그러니까~~~ 그분 따라서 봉사해야쥐~~ 그러니까~~ 그 분에게 헌금 바쳐야쥐~~ 그러니까 그 분 따라서 좋은 이웃이 되야쥐~~ 라고 다시 종교, 교훈을 섞죠. 이것을 누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4 복음서 이후 모든 서신서들은 이것을 계속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서 결국 종교는 정치로 변질되고 심지어 중세 카토릭과 같이 헌금을 드리면 연옥에 있는 조상을 천국으로 가게 할 수 있다. ~~~라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버리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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