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이 세상은 여러 인간관계들이 존재합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 관계, 스승과 제자, 주인과 종, 남편과 아내, 친구 관계 등등 그런데 이런 모든 인간관계는 단 1도 빠짐없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 예수님과 교회,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관계를 통해 사탄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지음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친구관계’로 복음을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친구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를 살펴볼까요?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명하는 대로 행하지 못했죠.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고 오직 ‘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로 오셔서 내 대신 행하셨고 내가 치러야 할 십자가를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나와 함께 공유하셨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나의 입장에서 보면 공짜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됨,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 구원받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합니다. 여기서 몸을 죽이는 자란 ‘인본주의적 인간관계’를 뜻합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본(기준)이 되는 세상을 말하죠. 그러므로 인간의 관계를 가장 무서워합니다. 나를 버릴까? 나를 때릴까? 나를 무시할까? 나를 죽일까? 나만 빼고 먹을까? 나만 빼고 모일까? 돈, 권력, 인기도 알고 보면 모두 타인과 나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해결책일 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친구되신 예수님’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딱 한 분 예수님만 나의 친구라면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관계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인본주의 관계를 두려워하여 그것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 진정한 친구이신 예수님과의 관계 맺음 없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더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면, 교회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더 신경쓰고 두려워하는 우리의 상태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안 그래~~'라고 하는 분을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나는 그렇다~~'고 하는 분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죄인인 나는 오직 기댈 곳이 예수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복음은 오직 인본주의 역설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방향에 존재합니다.
끝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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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이 말씀의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니라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날을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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