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완료)

눅18:9-14(24.03.29.금)

은혜바라기 2024. 3. 29. 08:17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오늘 본문을 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과 죄인 새리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은 종교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신앙인들입니다. 지금 현대 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인격과 높은 학식을 보유한 목사라고 할찌라도 감히 바리새인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리새인을 ‘악당’으로 보죠.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주인공과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의 구조인 현대식 문학 짜임새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의 모든 시간 중에 왜 하필 바리새인의 시대에 오신 이유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왜 하필 바리새인의 시대에 오셔서 그 자들과 계속 논쟁하시고 그 자들의 손에 죽으셨을까? 바리새인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바리새인의 진정한 정체성은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꼭 되고 싶은 훌륭한 신앙인’을 의미합니다. 지금 묵상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고 내가 교회에서 어떤 신앙인이 되고 싶은가?를 잘 생각해보세요. 그 모습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 광야 시험을 생가해보세요. 첫번째가 의식주(재물)의 대표인 먹는 것을 통한 시험, 두번째가 이 세상 권력(인기)에 대한 시험, 세 번째가 모든 성도가 볼 수 있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고 천사가 다치지 않게 수종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얻게 되는 종교적 신망입니다.

 종교적 신망은 오직 하나님만 받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가로채려는 것이죠. 특히 목사들이 그 열망이 큽니다. 성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고 그것을 본 성도들이 그 목사를 더욱 믿게 되는 장면을 많은 목사들이 꿈꿉니다. 혹은 훌륭한 인격을 훈련하여 성도들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존경하도록 만들기를 꿈꾸죠. 그러니 목사를 따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이 시험에서 벗어나신 유일한 분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이나 유기된 자들이나 모두 똑같습니다. 단 한가지 틀린 점은 선택받은 자들은 성령께서 오셔서 이것을 알려주신다는 점이죠. 

 11,12절에서 말하는 바리새인의 훌륭한 행위는 인간의 기준으로 거짓이 아닙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은 이런 훌륭한 신앙 행위를 연습하고 훈련하죠. 그리고 일정기간 인턴기간을 거친 후 합격을 해야 바리새인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전부 ‘자기 의’를 위한, 즉, 종교적 신망을 얻으려는 ‘욕심’일 뿐입니다. 인간은 절대 선한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롬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런데 죄인 새리는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만 하죠. 오직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긍휼이 실체화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이 죄인 새리를 ‘의롭다’하였죠.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을 ‘의롭다’하는 것은 그들이 진짜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그들의 죄를 덮고 ‘의롭다고 해줄께~~’라는 ‘칭의’일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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