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굉장히 뜬금없죠? 직전 묵상이 ‘인자의 날’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심판에 대한 것이죠. 심판이라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이요. 유기된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멸망입니다. 구원과 멸망을 가르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죠.
심판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말은 언제부터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종말의 시작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완성된 순간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심판의 중심에 있으시죠.
그래서 심판에 관한 가르침은 항상 예수님의 날, 십자가의 날, 인자의 날이 같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뜬금없이 ‘주여 어디오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영어 성경으로 풀면, ‘ "Where, Lord?"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매우 이상하죠? where이라는 의문사 다음에 Lord(주님)외에는 문장이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소‘라는 특정 단어에 초점을 마춘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이전 본문을 보면 심판의 날, 인자의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하면서 매우 강하게 ‘지붕 위에 남아 있으라~~’는 ‘장소’를 옮기지 말고 일정한 ‘장소’를 유지하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집은 인본주의를 의미하고 세간은 인본주의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늘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돌아보지 말라. 출애굽 이후 애굽을 그리워하지 말라. 는 말과 대동소이하죠.
그래서 제자들은 우리가 꼭 있어야 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예수님이 항상 계시는 장소는 어디인가? 라는 많은 질문을 통합하여 ‘장소(where)’에 포커스를 마춘 것입니다.
이 후 예수님의 대답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라고 대답을 하시죠. 이때 주검이 나(교회)를 가리키고 독수리가 복음을 가리키는 모든 표지판들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주검이 된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죽은 자들을 예수님께서 살리셨죠.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복음으로 살리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그 주검을 파먹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장 선행되어야하는 것이 '나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산 자'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면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눈을 떴기 때문에 오직 살아 있는 자는 예수님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치료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님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이죠. (왜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사역을 반복해서 성경에 기록하셨는지 아시겠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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