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2:12-13(24.07.12.금)

은혜바라기 2024. 7. 12. 08:4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일곱 교회는 일곱 개의 교회가 아니라 복음에서 완전 숫자 7을 사용해서 온전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고로 일곱 교회는 바로 ‘나’입니다. 각각의 일곱 교회의 장, 단점을 파악하여 그것을 배우고 따르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이 일곱 교회의 모든 상황은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을 살아갈 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를 설명할 때 항상 예수님의 정체성을 먼저 설명하죠. 버가모 교회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먼저 이야기하시죠. 성경은 항상 하나님의 우편은 양, 좌편은 염소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태초부터 이미 양과 염소, 즉 선택받은 자들과 유기된 자들이 나누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이 세상에서 서로 섞여 있죠. 유기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이 섞여 살고 있지만 더 본질적 의미는 선택받은 자들의 속에 옛 자아와 거듭난 자아가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라고 의식하는 모든 것은 전부 나의 '옛 자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라고 의지하는 것이 '거듭난 나'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유기된 자들과 똑같이 옛 자아로 살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선택받은 자들의 눈을 뜨게 하여 복음을 보게 하시면 그 때서야 죄인된 나를 보게 되고, 소망의 예수님을 됩니다. 이렇게 복음은 나를 좌, 우로 분리하여 볼 수 있는 심판의 기능을 하죠.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성 중 하나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사는 곳이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이 세상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기독교라는 종교도 포함이 됩니다. 이 땅의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교회죠. 참 교회는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총체를 가리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이 땅의 지역교회도 성령께서 만드신 것이 분명하지만 그 교회는 참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합니다. 매우 강력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죠. 그래서 일곱 교회가 모두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의지로 예수님이라는 분을 믿을께~~’ 라고 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 분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고 그 분을 쫓아 다니며 ‘믿는다’고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선언하셨죠. 심지어 현대 사람들은 마음 속에 예수님을 상상하면서 그린 예수님의 그림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게 하면서 그 증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즉, 참 진리를 엿본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증상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절에서 부처를 보면서 내가 부처를 믿을께~~ 라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교인들은 절의 자리에 교회건물을, 부처의 자리에 예수님을 바꿔 놓고 내가 예수님을 믿을께~~ 라고 부르는 종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것도 나중에는 그냥 인간관계로 치중하면서 끝나죠. 

 그래서 이 세상도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지만 이 세상에서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터의 최전방이죠.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안디바’라는 사람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죽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버가모 교회의 칭찬~~ 으로 받으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나타날 증상이라는 뜻입니다. 

 ‘안디바’라는 이름의 뜻은 ‘모든 것을 반대하는 자’ 혹은 ‘아버지를 반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의미하고 아버지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분노(사탄)의 자녀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을 떠서 참 복음과 진리를 알게 되면서 모든 역사관, 세계관이 바뀌죠. 그래서 이 세상을 부정하고 나의 옛 자아를 부인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가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는 안디바가 되는 것입니다. 즉, 안디바 같은 선교자가 되라~~ 는 뜻이 아니라 결국 선택받은 자들은 이 세상 인본주의 가치를 반대하고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길을 뚜벅 뚜벅 걷다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견인하신다는 것이죠. 

 종교(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넣어두신 포장지 기능을 하지만 유기된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쌓으면서 자신들만의 인본주의 종교를 만들어갑니다. 생각을 곰곰히 해보세요. 복음은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사실 매우 단순합니다. 그런데 왜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나뉘고, 개신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수십개로 갈리고, 장로교는 또 합동, 합신, 고신등 수십개로 갈리는 지... 이 현상이 이해가 되십니까? 각각은 자신들의 신학교에서 전부 조금씩 다르게 성경을 가르치죠. 여러분이 복음의 본질을 알고 게신다면 이런 현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 땅의 '교회'는 그냥 '종교'일 뿐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쫓지 마십시오. 이용만 하시면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며 그 분이 누구인가? 를 묵상하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너무나 궁금하고 오직 그 사람만 하루 종일 생각나는 것 처럼 말이죠~~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 핸드폰에서는 첫 화면 중간에 보시면 “분류 전체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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