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님의 모든 행적은 지금 이 시대 선택받은 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행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피소드도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선택받은 자들에 국한합니다.
오늘도 36절을 보면 ‘무리를 떠나’라고 되어 있죠.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매우 짧은 두 구절에서 구약의 출애굽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많은 무리가 모여듭니다. 현대의 목사라면 그 무리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고 조직과 프로그램을 짜서 종교 동호회를 만들려고 하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이적과 기적이라는 포장지로 싼 복음을 전파한 후 자신이 선택한 제자들과 함께 그들로부터 피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적은 예수님께서 인본주의(밤,죄)에 들어와 그 안에서 복음(빛)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택받은 자들을 찾으신 후 그들과 함께 인본주의를 탈출하는 패턴의 반복입니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탈출 시킨 것,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것, 갈대아 우르(바벨론)에서 아브라함을 떠나게 하신 것 등등 수 없이 많은 같은 패턴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도 예수님께서 다시 반복하면서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작도 35절을 보면 ‘날이 저물 때에’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빛이 없는 어두움은 인본주의의 상징이죠.
36절에서 보면 다른 배들도 쫓아 온다고 표현한 것은 출애굽 때에도 애굽 군사가 쫓아온 것을 살짝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과 같은 상황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죠.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은 인본주의에서 벗어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고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을 오늘은 ‘큰 광풍이 일어나며’라고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이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셨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큰 광풍이 부는 것과 같은 고난이 올 때 예수님께서 왜 나를 도와주지 않고 잠잠하시는가? 라는 불평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설명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우리의 고난은 예수님께서 잠을 자고 있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베개까지 베고 주무신 이유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너무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2천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유치원생을 가르치듯 너무 친절하게 포퍼먼스까지 보이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보이시나요?
이후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자 바람이 잔잔해지죠. 이것은 우리가 겪는 고난도 예수님의 능력 앞에서 한 마디로 정리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초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참 의도는 ‘우리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의 옆에 계시지만 우리는 고난이 오면 믿음이 흔들리죠. 그래서 그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잘 따라오세요. 좀 더 깊이 생각하셔야합니다 .
우리의 삶에서 고난은 수시로 찾아오죠. 그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늘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때 마다 예수님께서 안 계신 것 같고 그 고난이 해결되면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있는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기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삶의 패턴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늘 가짜로 들통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는 복음의 핵심을 알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진리의 답 알게 됨’을 참 믿음이라고 합니다. 두 믿음이 존재하고 그것을 구분한다는 것이 어렵죠? 이것은 아무리 잘 설명하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이 두 가지 믿음을 뚜렷하게 구분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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