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5:1-9(21.12.03.금)

은혜바라기 2021. 12. 3. 09:02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장로들의 전통이란 율법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규칙이죠. 장로의 유전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현대교회의 성찬식, 예배, 주일성수, 십일조, 각종 직책, 목사안수 등등 모든 교회법(질서,규칙)은 다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복음이 완성된 이 후에는 사실적으로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교회의 질서를 지키려다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시는데 사용하신 방법이 '모순 드러내기'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이 있죠. 틀림없이 지켜야되고 이를 어길 경우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고 하죠. 그런데 누가 '하나님께 드림(예배)'이 되기만 하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지만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버리게 되는 모순이 생기죠. 이 모순을 감추는 자들에게 이 모순을 드러내시면서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비판하십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모두 잘 지키라는 것일 수도 있자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말씀의 촛점은 어느 누구도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명은 우리가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다.' 라고 하면 틀림없이 모순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방법대로 계명을 지키죠. 이것을 말씀에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주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이죠. 
 
 복음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그것을 마음에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어떠한 흔들림도 없습니다. 복음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첫째는 '우리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죄인, 먼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로 오셔서(인자 예수님)' 모든 것을 이루셨다.'  두번째는 '그렇게 죄가 1도 없는 그 분이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댓가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입니다.  이 두 가지가 복음의 전부, 성경의 전부, 역사의 전부, 인생의 전부 입니다. 이 두 부분을 조금만 더 살펴보죠.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선악과를 먹게 되죠.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그러면 지켜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다 지켜내면 우리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선을 지킬 수 있는 자)

 

 그런데 인간은 절대 율법을 단 하나도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 손 들고 항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인간 스스로 '율법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죠. 그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수준으로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율법의 실체를 다시 설명하시죠. '마음에 품기만 해도 간음', '형제를 미워만 해도 살인' 등등 기준 자체가 절대 인간이 지켜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즉, 진짜 하나님의 의도인 '하나님께 항복'하고 오직 은혜만을 바라라'라는 것을 가르치셨죠.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버리고 그것을 알려주는 분(예수님)을 살인합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 규칙'을 따르죠. 교회(공동체)에 인정 받고, 스스로에게 인정 받는 것에서 인간은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전부 다 지옥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오직 단 한가지 조건은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누구도 그것을 해 낼 수가 없죠.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율법은 다 이루어 내셨죠.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율법의 본질(내용)을 다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천국은 예수님만 가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렇게 까지 하신 이유는 그 분이 태초에 선택한 그 분의 사랑하는 신부들을 찾으시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 분은 십자가를 지시게 되시죠. 그런데 여기에서 '선한 모순'이 생겨버립니다 . 즉, 죄가 1도 없으신 분이 '벌'을 받게 되는 모순이죠. 하나님의 법칙이 선하게 깨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법칙을 만든 하나님께서 죄가 1도 없이 벌을 받게 된 예수님께 '보상'을 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보상으로 '우리의 구원'을 원하신 것이죠. 

  
 끝.

 

P.S 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복음의 눈을 뜨신 분들은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 그러나 이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마시고  오직 " 마음이 가난한 자"를 중심으로 전파해 주세요.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 버립니다.

 복음에 눈을 뜨고 이 글을 묵상하는 분들은 주위에 이런 분들이 눈에 들어 온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반대로 마음이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감당하기 어려운 박해를 받게 됩니다.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란 사회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그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치만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가 충돌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을 살인(부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여러분을 박해(오해)하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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