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5:10-20(21.12.06.월)

은혜바라기 2021. 12. 6. 08:59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복음의 진영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라'라는 말씀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것을 온전하게 해내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앎(믿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해낸 것으로 거저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것을 해내신 분이고 우리는 성령께서 오셔서 고난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없는 존재 즉, 우리의 죄됨과 무가치함과 무능력함을 깨닫게 해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도록 이끌어서 구원을 해내는  방식이죠. 그런데 선택받지 않은 자들은 그것을 스스로 이루려고 달려가죠. 교회 밖에서는 세상이 박수치는 곳을 향하여 달리고, 교회 안에서는 '좋은 신앙인'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죠. 이들은 절대 자신이 달릴 수 없는 존재라고 깨닫지 못합니다. 달릴 수가 없어 주저 앉아 버린 자들만이 예수님께 손을 내밀게 됩니다. (이 글은 이렇게 달리지 못해 주저앉은 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때 세상은 '다시 힘내 달려보자'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고, 복음은 '결국 예수님 밖에 없지~~~'를 가르쳐주는 방향성을 가지게 되죠. 이것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두 쪽으로 갈리는 것이죠.  )

 

 인본주의에서 분리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부인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와 '땅'은 다른 개념입니다. 성경에서도 숫자로 계속 다르게 표시하죠. 인본주의는 숫자로 '6'을 사용하고, 땅은 '4'를 사용합니다.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4는 천국의 숫자 7을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숫자이며(3(하늘)+4(땅)=7(천국)) 6은 절대 7일 될 수 없는, 7과 비슷하게 흉내 내려는 숫자일 뿐이죠. 

 입으로 들어가는 것. 음식이이죠.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시죠. '음식'이라고 표현하지 않으시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음식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대표되는 모든 하나님의  모든 자연법칙이나 인간본능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음식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법칙대로 움직인다고 하시죠. 즉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대로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즉, 인간의 기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럽지 않다고 하십니다. 조금 감이 오시나요? 숫자 '4'로 표현되는 이 세상은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선하게 창조되었죠. 그러나 그것을 규정한 인간의 마음, 즉 인간의 기준이 더러운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인간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이 만든 법칙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절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인본주의로 기준하는 마음의 법이 잘못된 것 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시죠. 그 이유는 그 마음에 '나(인본주의)의 기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람이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 경우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벌써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나의 기준'이 인본주의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타협하여 내 놓은 기준이 바로 '우리의 기준' 즉, 공동체 인본주의죠. 둘 다 악합니다. 
 
 이런 인간의 모든 인식, 즉 그 기준은 항상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증언, 비방으로 인식한다고 표현되었죠. 여기에서 '악한 생각'은 인본주의 자체를 뜻합니다. '살인'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간음'은 신랑 예수를 버리고 인본주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말씀의 본질을 도둑질하여 없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증언'은 복음을 인본주의 종교로 바꾸어 거짓되게 설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방'은 인본주의편에서 복음의 진영을 비판하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이 땅에 심겨지지만(살아가지만) 종말에는 복음의 진영에 있지 않는 자들은 뽑힐 것(심판)이라고 하죠. 
 
 맹인은 인본주의에 묶여 복음을 보지 못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들이 또 다른 맹인을 이끌면서 둘 다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죠.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지금의 현실 교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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