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4:28-33(21.12.01.수)

은혜바라기 2021. 12. 1. 09:0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기도 물 위를 걷는 신비함'을 체험하고 싶어하죠. 이것을 인본주의 종교라고 합니다. 잘못된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상황을 복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셨기 때문 입니다. 


  '기독교의 기적'이란 복음 해석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주님은 바울의 육체에 난 가시(병)를 절대 고쳐주시지 않았죠. 그 이유는 그것이 바울에게, 그리고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 복음을 더 잘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기적의 능력을 가진 바울도 본인의 병을 고치치 못한다라는 것은 복음의 능력이 바울에 있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혹시 기도하여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싶으세요? 그것을 통해 성경보다 더 복음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하나님게서는 100%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확장된 자아인 우리,교회,가족,나라)가 잘먹고, 잘살고,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만 두셔야합니다. 
 
 '오라 하시니'가 뜻하는 바는 복음의 출발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예수님의 부름심 부터라는 것 입니다. 이 후 '물 위로 걸어서'란 '역사 혹은 인생'속에 던져진 '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걸어서' 예수께로 가죠.  그러나 이 걸음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곧,  인본주의 세파에 우리는 항상 걸려 넘어집니다. 그 때서야 다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이 말을 매일 자각해야합니다. 이 반복이 정확하게 '복음의 메카니즘'입니다. 
 
 이 후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나를 붙잡죠. 이것이 구원의 촛점이죠. 내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는 것입니다. 중간에 '즉시'라고 굳이 표현되죠. 구원에 관한 긴박성을 뜻합니다. 내가 긴박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긴박하다고 느낄 정도의 존재가 못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향하신 구원에 대한 계획과 행위와 마음이 긴박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시죠.  믿음이 작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a few(아주 적은) 보다는 few(거의 없는)에 가깝죠)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앎'이 '참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믿음(Faith)'이라는 낱말을 쓴 이유는 그 말이 그나마 참믿음과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믿음을 정확하게 해설할 수 있는 낱말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므로 조금 더 설명을 하죠. 

 

 정확한 낱말로 존재하지 않는 참믿음의 가장 가까운 뜻 풀이는 바로 '복음을 알게 됨' 입니다. 이것을 성경에 낱말로 기재하여 유한한 죄인들이 알아듣게 해야하죠. 뭐라고 할까? '앎'?  '깨달음'? 등등의 낱말이 전부 비슷하죠. 그 중 가장 가까운 낱말로 선택된 도구가 '믿음'입니다. 지금도 교회에 십일조 내면서 '10배 3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을 것이야'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자들이 많죠. 이 때도 '믿음' 입니다. 이 믿음은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있는 '감정+논리'죠. 

 

 즉, 인간이 알고 있는 '믿음'자체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려는 '믿음'과 전혀 다릅니다. 참믿음은 '복음을 알게 됨'입니다.  즉, 진정한 실체와 진리을 보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결과물을 말하죠. 이 '알게 됨', 즉 '아~~ 이것 밖에 진리가 없는 것이구나~~~'의 '알게 됨'을 설명하려니 많은 단어 중에 그나마 가장 속성이 비슷한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믿음'이라고 읽고 '복음'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물질 축복 받을 수 있는 믿음' 봉사하고 '더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믿음' 기도하고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헌금,봉사,기도 심지어 살인, 거짓말, 간음 등 어떤 것을 통해서도 '복음을 알게 됨' 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이 '믿음'이 없구나~~즉, '아직 복음이 뭔지 모르는 구나' 넌 아직도 '신비주의'라는 이 세상 믿음에 묶여 있구나~~ 를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죠. 
 
 이 후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는 '방주'곧 천국이겠죠. 그리고 '함께' 이 단어가 가장 중요합니다. 방주(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죠. '예수님과 함께'입니다. 그러니 '바람'이 그치죠. 완벽한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뜻합니다. 이것을 평강이라고 합니다.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사탄이 주는 편안과 혼동하시면 안되요. 30평짜리 집을 사려는데 1천만원이 부족해서 답답했는데. 기도했더니 갑자기 1천만원짜리 복권이 당첨이 되면서 문제가 해결되면서 오는 마음의 편안함을 위의 평강과 헤깔리시면 안됩니다. 사탄은 오직 복음을 흉내낼 뿐입니다. '작은 것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 요즘 많이 찾죠? 심지어 인생의 답인것 같죠? 절대 아닙니다. 위장된 편안일 뿐입니다. 오직 평강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음에서만 옵니다. 
 
 이에 배에 있는 사람들 곧 천국에 있는, 선택받은 모든 이가 예수께 절하죠.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죠. 물론 이 상황에서 이 고백은 복음에 기초된 본질적 고백이 아닐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신적 숭배'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1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의 촛점은 이 잘못된 '신적 숭배'의 에피소드를 이용해서 성경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설명의 대상이 바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위의 말씀은 이렇게 인본주의 방식으로도 해석도 가능하고 반대로 복음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아니 인류의 역사도 이와 똑같습니다. 모든 것에서 복음을 볼 수 있는 자가 되기시를 기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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