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산'이라는 것은 성전을 상징합니다. 조금 어려운 개념이긴한데, 산은 땅이지만 가장 하늘과 가까운 땅이죠. 즉, 인본주의에서 분리된 땅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전이 실제로 산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산'하면 '성전'을 머리에 떠 올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앉는다'라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가르친다'를 상징합니다. 이것도 이스라엘 문화를 차용한 것이죠. 이렇게 성경은 역사적, 문학적 기법을 가져다가 복음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역사학자, 문화연구가들의 연구와 해석을 도구로 사용하여 복음을 설명하는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오직 예수그리스도(복음)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모두 모여 열심히 협력하여 봉사하자(교회에서 김장김치 담그면서 많이 하는 말이죠)' 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인본주의에서 말하는 협동의 정의일 뿐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앉으셔서'라는 것은 '성전에서 가르친다'를 의미하고 성전은 선택한 자들을 뜻하고 가르치는 것은 오직 복음만을 뜻하기 때문에 이 말의 최종 뜻 풀이는 '예수님께서 선택한 자들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친다.'라는 뜻이 되죠.
다리 저는 사람이란 똑바로 걷지 못하는 자입니다. 복음이라는 길을 제대로 걸어가야하는데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자를 뜻하죠. 맹인은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는 말씀 안에 있는 참 본질인 복음을 보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하니 복음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렇게 실제로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 죄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상태 자체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상태를 이용하여 예수님께서 '진짜 죄'에 갖힌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런 상태를 치료하는 것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지금 현대에서 '신유(병고침)'의 은사는 모두 거짓입니다.-물론 교회 밖에 있는 자들도 병이 낫게 되는 인류 공통의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써의 은혜는 존재하죠. )
이것을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죠. 이 장면이 바로 천국이라고도 하겠죠. 당시 이 장면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관습' 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장면도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신 것 뿐입니다. 즉, 이 자들은 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이 필요하신 것 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을 위해서죠.
오늘의 본문을 결론적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면, '예수님이 인본주의 바벨탑에 묶여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생을 살 것'이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말하고, 자연과 우주가 말하고, 역사와 인생이 말하고 있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인생에서 어떻게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잘 봐라! 다리 저는 사람은 올바른 길을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이지? 왜 이 사람이 이런 상태로 태어 났을까?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것으로 복음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올바른 길은 오직 '복음' 뿐이고 다리 저는 사람은 그 복음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단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고쳐준다는 것은 오직 나 예수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지~~ 이렇게 너가 '눈을 뜨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다. 인생은 이렇게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전부란다. 다른 가치가 없단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에피소드가 나오죠. 그것으로 오늘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요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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