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9:16-22(22.01.05.수)

은혜바라기 2022. 1. 5. 09:04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전형적인 인본주의종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질문이죠.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현대의 기독교인들도 다 이 생각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죠. 이 생각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보죠.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를 통해 사람은 절대 선한 일을 할 수 없다고 가르치집니다. 조금 의역을 해보면 '사람에게 선한 일을 가르쳐 준다 해도 절대 선한 일을 할 수 없는데 왜 그것을 묻니?' 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선한 일이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고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이 선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모두 선한 일입니다.' 고로 하나님과 분리된 인본주의에서는 결코 선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네가 선한일을 행하려하는 이유는 천국(생명)에 들어가려는 것이 목적이지! 그렇다면 그 목적만 이야기 해보자' 이 말씀이 바로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 뒤에 이상한 명령이 나옵니다.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복음에 들어 와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계명을 지키라'고 말하는 순간 '난 지킬 수가 없습니다.' 라고 고백을 해야 되겠죠. 그러나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로 대답합니다. 만약 이 청년이 '전 지킬 수가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했다면 이 청년은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위로를 받을 것이고 천국이 이 청년의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다 지켰다.'로 대답을 하죠. 마음이 부자가 되었죠. 인본주의적 결과물이 마음을 꽉 채웠죠. 이렇게 꽉 채워진 마음 속에는 결코 복음이 들어갈 수가 없죠.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 여기서 다시 중요한 촛점을 잡아야합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어리석은 청년을 깨우치는 이솝이야기같은 글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청년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란 예수님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절대 사람은 온전하여 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청년의 이야기로 끌고 가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온전하고자 할진대라는 말로 우리는 이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네 소유를 팔아'는 정확히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에서 그 분의 모든 것을 다 파시는 것을 뜻하죠. 이 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에서 가난한 자들은 선택된 백성, 즉 교회(나)를 뜻합니다. '하늘에서 보화가 있다'라는 것은 당연히 천국을 이야기하죠. 이 짧은 한줄에서 복음이 전부 드러난 것입니다. 즉, 이 청년에게 예수님의 역활을 할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 후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하죠.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결국 인간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율법을 다 이루신 것이다." 라는 결론을 숨겨 놓으신 것입니다.

 

 이 청년의 마지막 모습은 '근심하며 가니라'로 끝나죠. 이것이 매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모습이 유기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예수님과 분리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나'의 모습이죠. 그래서 '나'는 결국 '안되는 자'입니다. 여기서도 '나는 결코 예수님 곁에서 떠나지 않겠다.'로 결론이 나면 그것 조차 행위로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답'이 없는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렵죠?

 

 조금 예를 들어볼께요. 사방이 막혀 있는 지저분한 네모난 방이 있다고 해보죠. 그 방을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치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이리 저리 다니며 지저분한 것을 치우겠죠. 지저분한 것을 다 치우면서 '다 치웠다.'고 생각을 하겠죠. 그러나 절대 이 방은 깨끗하게 다 치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방에 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내가 나를 치워야 그 방은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방'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처음부터 이 방을 치우라고 명령한 사람은 그것이 목적이었죠. 내가 가장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내가 나를 치워버리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어떤 분이 오셔서 나를 치워버리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죠. 그런데 그 분은 단 한가지 조건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즉, 그 분은 '완벽한 깨끗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이 방에 계셔도 깨끗함으로 인정된 분이어야하죠. 이것을 '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깨끗함으로, 즉 그 분의 피로 나를 덮어서 깨끗하게 보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방은 '완벽하게 지저분한 것이 없이 깨끗함(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 예문에서 그 분이 예수님이고, 그 방이 천국이며, 그 방의 쓰레기가 '나'입니다. 그 방을 만들고 치우도록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며, 이 방에서 있는 공간과 시간을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것을 치우는 것을 '행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더러운 쓰레기인 것을 알게 된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 즉, 이 모든 상황의 본질을 '복음'이라고 알려주신 분이 성령이시죠. 그리고 이 복음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갖가지 에피소드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중간에 '계명을 지키라' 하시면서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등등'의 십계명의 6-10계명을 구체적으로 예를 드신 이유는 우리가 절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계명의 실체는,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살인하지말고 , 그 분에게서 떠나 인본주의를 사랑하는 간음하지말고, 그 분의 말씀을 다르게 듣고 전하는 거짓말하지 말고, 그 분의 복음을 훔쳐서 버리는 도둑질하지말고, 예수님없는 천국을 탐하지말라는 말입니다.

 

 물론 10계명은 '나' 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상징'입니다. 즉,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도 절대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진짜 계명의 본질인 나와 예수님의 관계를 내가 파탄낸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10계명을 다 파탄냈죠.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1-5계명)하면서 이것(6-10계명)을 전부 지켜냅니다. 그래서 이웃인 나를 내 몸같이 사랑하신 유일한 분이 되셨죠. 성경은 계명을 다 어기고 있는 창녀같은 교회와 오직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된소식이죠. 창녀의 입장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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