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여기서 집주인이란 당연히 하나님이시겠죠. 그 분이 만든 포도원이란 천국입니다. 그런데 산울타리, 즙짜는 틀, 망대의 구체적인 기물도 집주인이 만들었다고 하죠. 이것은 복음(구원)의 모든 계획와 섭리를 오직 하나님께서 만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이 단 1도 포도원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농부에게 세를 주셨죠. 농부는 '우리'입니다. 우리에서 맡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긴 것이죠.(그래서 청지기라는 개념으로 사셔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오직 목적은 열매였죠. 그리고 그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까지 의역을 해보면 ' 하나님께서 이 땅에 천국복음을 알 수 있도록 모든 장치를 다 하셨고 우리가 그 섭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열매에 이르기를 바라신 것' 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맺기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살피기 위해 종들을 보내죠. 이 종들은 선지자로 상징되죠. 이 선지자를 심히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죠. 박해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의 행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이죠. 그 목적도 분명하고요.
왜 이들은 이렇게 종들을 박해하였을까요? 그들은 열매를 예수로 알아 듣지 못하고 행위로 알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름 행위로 쌓아 올린 열매를 자신의 가치로 그 품에 품고 절대 그 가치를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와서 그 열매는 절대로 가치가 없다고 선포하니 그들이 미웠던 것이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항상 발견되는 행위들, 즉 헌금과 봉사 같은 노력들도 전부 가치없다고 선포되면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몇 십년의 신앙생활이 부정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박해로 이어지죠. 아마 지금 교회에 예수님이 오셔서 앉아 계셔도 대부분 그 분을 몰라보고 박해하고 다시 죽일겁니다.
오늘의 말씀의 결말에 보면, 결국 그 진정한 주인이자 실체인 예수님이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죠.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심판받아 마땅한 자죠.
그래서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천국을 준다'고 하죠 다른 농부들란 복음을 알게 되어 진정한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게 된 자들을 뜻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천국을 준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게 된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매우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조금 짧게 풀어보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는 것을 나무에 달린 어떤 예수님의 그림을 상상하고 그 상상에 집중하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 우리는 착각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스토리 전체가 이해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이해와 논리로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예수님의 설명을 들어서 이해되는 부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 나의 신랑이어서 그랬구나'라고 알게 되는 것이죠. 이 '앎'을 믿음이라고 하죠.
어렵죠? 예를 한가지만 들어 보죠. 10명의 아이들이 마이클잭슨에 대하여 그 사람의 음악과 인생을 꽤 뚫어 보듯 대화을 하며 토론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갑자기 그 중 한 아이가 '나는 그 분을 너희들 보다 몰라. 그런데 나는 사실 그 사람의 숨겨진 아들이야~~' 라는 한마디로 그 토론의 승자는 그 아이가 될 것입니다.' 이 숨겨진 아들은 마이클 잭슨이 짜장면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아들에게 짜장면을 양보하기 위한 '하얀 거짓말' 이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만 알 수 있는 것이며, 어느날 성령께서 내가 예수님의 가족(지체)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는 것이지요. 이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모든 포커스가 마추어져 창조 되고, 계획 되고, 섭리 된 천지창조, 인류역사, 우주와 자연, 인생과 죽음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끝없는 정체성입니다. (이것을 단지 나무에 달린 한 남자를 상상하는 것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