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완료)

창41:33-45(23.06.22.목)

은혜바라기 2023. 6. 22. 08:28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어제 묵상한 본문을 짧게 복음으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에게 복음을 가르치실 때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으로 가르치는데 뒤의 흉년이 앞의 풍년을 잊게 할 만큼 크다는 것이죠. 여기서 풍년은 ‘즐거움’이고 흉년은 ‘고난’입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즐거움보다는 고난이라는 도구를 더 많이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이 7년 풍년과 흉년에 대하여 바로에게 해법을 제시합니다. 

 33절을 보면, 첫째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라고 합니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혜란 ‘잘 듣는 것’을 의미하고 명철이란 ‘들은 것은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을 100%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고 100% 잘 지켜서 실천할 수 있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구원과 심판)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   

 34-36절을 보면, 풍년에 애굽 땅의 5분의 1을 거두어서 거기서 나오는 모든 곡물을 쌓아두고 흉년에 망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숫자 5는 ‘모세오경’ 즉, 율법과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풍성하게 주는 시기에 그 말씀을 내 안에 복음으로 잘 쌓아서 진짜 고난이 닥쳐올 때도 그 고난을 복음으로 해석하여 고난 속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면 늘 말씀을 듣게 되죠. 그런데 그것을 복음으로 자기 안에 쌓는 사람은 별로 없죠. 대부분은 말씀을 복음보다는 교훈과 종교로 받게 됩니다. 대부분의 교훈과 종교는 ‘인과율’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형제를 사랑하라 그러면 행복한 교회가 될 것이다’ ‘십일조를 잘 내라 그러면 재산이 10배 30배 100배 늘어날 것이다.’ 교회에 가면 이런 종류의 설교가 수 없이 난립하죠. 그런데 성도들은 인과율이 뚜렷한 설교일수록 훌륭하다는 평가를 합니다. 듣기에 매우 그럴 싸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고난은 자연재해(흉년)과 같이 ‘인과율’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에게 갑작스럽고 무자비하게 찾아옵니다. 형제를 사랑했는데 그 형제에게 뒤통수를 맞죠. 평생 십일조를 잘 냈는데 나의 사업이 부도가 납니다. 새벽예배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죠. 이때 말씀을 교훈과 종교로 배운 사람들은 "왜 나에게???"라는 의문에 빠집니다. 그러나 말씀을 복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그 고난에서 복음을 더 깊고, 넓게 알아가게 되죠. 즉 예수님의 정체성을 더 깊이 알아가데 된다는 것입니다. 기근이 클수록 요셉의 은혜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넘치도록 내 귀에 흘러오는 시기(풍년)에 그것을 복음으로 받아서 내 안에 쌓아두면 이 세상의 인과율에서 벗어나 있는 복음은 고난(흉년)의 시기를 ‘형통’의 관점으로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이후 37절 이하의 내용은,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아 애굽을 다스리게 하죠.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이 세상의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0절 이하의 내용을 다시 보면,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라고 바로가 말하는 내용도 정확히 예수님의 심판과 구원의 권한에 관한 의미입니다.   

 40절 이하의 내용 중에 바로가 요셉을 수레를 태우고, 인장 반지를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는 등등의 모든 행위는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즉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면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45절을 보면,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고 하죠. 이 뜻은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살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교회가 말씀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복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본주의에 묶여 있던 사람이 복음의 진영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살면서 복음을 알아듣게 되면 정체성이 바뀔 정도로 모든 세계관, 가치관이 바뀌어 버립니다. 즉,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또한 바로는 요셉에게 ‘온’이라는 지역의 제사장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삭과 야곱의 결혼 에피소드를 보면 아내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같은 가족(한몸)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교회는 한 몸이라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태초에 이미 선택받았다는 예정론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이방 지역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할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이방)에 오셔서 죄인인 교회를 신부로 삼으신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딸’ 이죠. 즉, 죄인이지만 구별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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