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허리에 띠를 띠고’ 라는 의미는 외출준비를 마친 상태, 즉 항상 준비된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준비된 순간 그 허리를 띠를 누군가 잡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굴까요? 성령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령의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원 뜻은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를 의미하지만 결국 복음적 출발은 오직 성령께서 이끄셔야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이끄심과 연결되어 있는 중의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죠.
‘등불을 켜고’라는 의미는 깨어 있으라~~ 눈을 떠라~~ 라는 의미입니다. 즉, 늘 복음으로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의미죠.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령의 조명하심’이라고 합니다. 컴컴한 방안(인본주의 세상)이지만, 즉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컴컴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스스로 그것을 볼 수가 없죠. 그런데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찾아가셔어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 조명을 살짝 켜시면 그때서야 비로서 그 사람은 그 성령의 조명 덕분에 그 아래 존재하는 복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서 있으라’는 의미는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긴박함을 의미합니다. 정확하게는 인본주의 영역에서 복음의 영역으로 '빨리, 항상' 이동할 수 있는 긴박함을 의미하죠. 그런데 이 3가지 조건들을 얼핏 보면,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본질은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를 끌고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굳이 우리를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선택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3가지 증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에피소드로 부연 설명하시죠.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는 종’으로 표현합니다. 어렵지 않죠? ‘복음으로 마음을 두드리면 복음을 알아듣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조명하시면 알아듣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 할 것은 이 구절의 본질은 이렇게 준비하라~~ 이렇게 알아들어라~~ 는 행위 방향성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방향성 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에 나온 비슷한 유형의 열처녀 에피소드를 보면, 이 비유에서 신랑은 신부들에게 '깨어 있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다섯 처녀는 버려두고 다섯 처녀만 데리고 가죠. 그런데 이런 구절이 삽입이 되어 있습니다.
"마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10처녀가 "다" 졸고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즉, 깨어 있으라~~ 라는 표현은 우리가 잘 알아듣기 위해 표현된 것일뿐 실제 깨어 있으라~~ 는 의미는 성령께서 견인하여 눈을 뜨게 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인은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라고 합니다. 이 구절이 매우 매우 이상하죠?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과 동일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종을 드는 것,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이경,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다면 복이 있다’라는 말씀은 구원은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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