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완료)

눅12:32-34(24.01.24.수)

은혜바라기 2024. 1. 24. 08:37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적은 무리여~~’ 라는 말은 복음적으로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구원받는 자들은 적은 수라는 의미도 되지만 진짜 의미는 구원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오직 천국은 예수님만 가는 것이죠. 1,000명보다 적은 100명, 100명보다 적은 10명, 10명 보다 적은 5명, 5명보다 적은 2명, 2명보다 적은 1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1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이것을 설명한 구약의 에피소드가 있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천사들에게 아브라함이 의인의 숫자를 계속 바꿔가면서 거래를 했던 내용입니다. 그러나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죠. 단 1명의 의인도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오직 롯과 그 가족만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죠. 여기서 롯이 예수님을 상징하고 그의 가족이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오직 예수님만 천국에 갈 수 있으시고 우리는 그 분의 품에 안겨 구원을 받게 되는 메커니즘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0' 오직 예수님의 공로(십자가)로만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33절을 보면,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는 구절이 나옵니다. 종교인들은 이 의미를 ‘선한 일을 하여 구제하고 그 선함을 쌓아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이 구절 안에 있는 복음적 본질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라'는 것은 이 세상 인본주의에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제하라'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을 구원하라는 말도 되지만 더 깊은 본질은 나의 옛 자아가 원하는 이 세상 인본주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인 거듭난 자아를 위한 방향성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거듭난 자아는 오직 예수님의 지체로 있을 때에만 그 의미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 이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고, 버려서, 즉 십자가에서 몸과 피를 다 파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죠. 

 

 심지어 인간은 재물을 팔아서 타인을 구제하는 것 조차 완벽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 타협만 할 뿐이죠. 매달 돈 3만원 아프리카에 보내고 이 구절을 다 지킨 것처럼 외식하는 것이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준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것을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했다.~~'라고 우기는 사람을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절대 할 수가 없는 존재로구나~~ 어이할꼬~~ 나는 망했구나~~'라고 죄인같이 외치는 자들이 선택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죠. 

 

 눈을 뜨지 못한, 행위에 꽂혀 있는 종교인들이 이 글을 보면, 그럼 아프리카에 3만원을 보낼 필요 조차 없다는 것이냐? 라고 반문하죠. 태어나면서 부터 눈을 감은 자에게 빨간 색 장미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만져지는 촉감을 매개로 생각하고 의식하기 때문이죠. 이들에게는 어떤 완벽한 설명도 의미가 없죠.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눈을 뜨게 하여 빨간 장미를 보게하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사람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이 구절이 종종 등장하여 자신의 현재 위치를 조명합니다.  즉, 선택받은 자들도 돈을 모으고 쌓는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만 어느 순간 성령께서 오셔서 이렇게 돈을 쌓는 노력의 무가치함을 알려주시면 그 순간 잠시 그런 무가치함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이 세상의 가치를 바라보던 나의 방향성을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방향성으로 돌리죠.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라'라는 구절을 행위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불교식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무소유를 추구하고 노력하라~~ 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죠. 이것은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에 다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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