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나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가는 길’이라는 표현은, 인간은 율법(말씀)과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거쳐 심판이라는 최종 결승점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나를 고발하는 자는 ‘율법(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실체는 예수님이시죠.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나의 모든 행위는 그 본질까지 들추어내면 모두 죄 덩어리뿐입니다.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추어내어 고발하는 역할을 율법(말씀)이 하죠. 그래서 원래 나는 최종 결승점에서 하나님께 심판받고 멸망합니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는 길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나를 고발하는 자’와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화해를 하는 것이죠. 성경은 우리가 쉽게 알아들으라고 이렇게 기록하였지만 이 말씀의 본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와 한 몸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지 못하면 마지막 구절에 표현된 것처럼 우리는 한 푼이라고 남김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지옥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로 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갚으셨죠. 그래서 나는 구원받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정체성을 잘 묵장해 보세요. 그 분은 율법(말씀)이 되시기도 하고, 심판자가 되시기도 하고, 나를 대신한 인자 예수님이 되시기도 하시죠. 온통 다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종교인들은 오늘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까요? ‘인생을 살다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가 되는 경우 빨리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보상하고 화해를 하여 더 나빠지는 상황을 모면해라~~’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성경을 모두 나 중심, 인간 중심, 행위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1차적으로 이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면 종교가 됩니다. 우리는 절대 스스로 우리의 죄의 대가를 다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킬 능력도 없죠.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예수님의 시야를 공유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성경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되죠. 나(인간, 행위) 중심으로 읽던 성경이 그때부터 예수님 중심으로 읽게 됩니다. 심지어 그때부터는 나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조차도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역사는 history입니다. (그(his:예수님)의 이야기(story))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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