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 주인으로 나온 ‘한 사람’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또 무화과 나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시작합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가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심겨진 이야기죠. 즉, 원래 심어지지 말아야 할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셔야 합니다. 심지어 무화과 나무는 그 특성상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무화과 열매는 열매가 아니라 사실 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는 장면이 나오죠. 마태복음의 에피소드도 오늘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교회가 열매(행위 결과)를 맺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되니 까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 어떤 교회도, 그 누구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하나님께서 모두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포도나무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 자체가 모순이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열매 운운하는 주인 또한 모순이죠? 그래서 이 비틀어진 이야기는 이 세상의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사실 '성경' 자체가 이 세상의 논리로 읽을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성경을 이 세상의 논리로 읽게 되면 교훈 혹은 종교에 머무르죠. 절대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나타냅니다. 즉, 무화과 나무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달렸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어떤 것으로도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말씀)을 주셨죠.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면 구원을 얻게 되고 그 말씀대로 못 살면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에피소드에 그 이유가 나와 있죠. 원래부터 인간은 단 1개의 율법도 지킬 수 없는 무화과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면서 율법을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을 심판에 가두기 위해서입니다. 이후 하나님의 긍휼인 예수님으로 하여금 구원을 이루시게 하기 위해서였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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