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20:11-15(24.11.29.금)

은혜바라기 2024. 11. 29. 08:2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당분간 서론에서 요한 계시록을 전체적으로 분류 & 요약 & 반복합니다. 한 번 읽으신 분은 [[ 이중괄호 ]]를 생략하고 묵상하시면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예언서가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복음적 관점에서 묵시 문학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와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날 같은 방향성의 사건은 계속 일어나지만 그것은 초점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무서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미리 그 내용을 이야기해줌으로써 복음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평강을 얻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일곱 교회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숫자 7은 복음적 완전수이기 때문에 일곱 개의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 선택받은 모든 사람의 완전한 모임을 의미합니다. (묵시에서 완성된 참 교회를 의미하죠.)
 이후 7인, 7나팔, 7대접의 고난이 나오죠. 인은 ‘은닉속성’ 나팔은 ’알림속성‘ 대접은 ’준비속성‘을 의미합니다. 7은 복음적 완전수라고 했으니 복음이 은닉속성, 알림속성, 준비속성을 가지고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담겨 선택받은 자들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요한계시록1~16장입니다. 숲이 아닌 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분류해서 설명하듯 고난을 통한 복음의 메시지를 숫자1234567로 나누고 각각의 숫자의 속성을 이용해 설명한 것이죠.
 이후 17장 부터는 나무가 아닌 숲은 보면서 전체적인 복음적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17장은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붙잡고 있는 죄의 본질인 인본주의 정체에 관하여..
 18장은 그런 인본주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하여..
 19장은 그런 인본주의가 심판되면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20장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천년 왕국으로 비유하면서..
 21장~22장은 결국 완성되는 예수님 나라의 모습으로 요한 계시록은 끝을 맺습니다. ]]


 ‘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땅과 하늘’이 예수님 앞에서 피하여 없어졌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땅과 하늘’은 모든 피조물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고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시면 예수님을 가리키던 모든 상징은 조용히 물러나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두 가지 책이 나옵니다. 생명책과 행위책들입니다. 생명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15절을 보면 그 결과가 나오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라고 나옵니다. 완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12절에서 ‘행위들이 기록된 책들’이 '생명책'과 별개로 등장하면서 생명책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행위가 나쁜 사람, 보통인 사람, 올바른 사람을 뽑는 것이 목적이라면 ‘행위책’만 존재하면 됩니다. 그래서 행위가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가고 행위가  올바른 사람은 천국에 가면 됩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행위책’과 다른 ‘생명책’이 별개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행위와 아무 상관없이 전혀 다른 조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연히 생명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묵상을 해야 합니다. 

 계속 말씀드렸지만 성경은 유기된 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들려주는 책이죠. 그래서 이 ‘행위책’에 의해 심판받는다는 것의 초점도 본질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시절 1세대 60만명이 고난 속에서 모두 죽고 오직 2세대만 가나안(천국)에 들어간 것처럼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1세대)로 이 세상(광야)에 살면서 고난 속에서 계속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거듭난 자아인 새로운 피조물(2세대)만 예수님과 연합하여 천국의 삶을 살게 되죠.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사는 동안 행위에 묶여 살게 됩니다. 그 행위는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잣대와 인본주의 잣대 속에서 갈등을 하게 됩니다. 즉, 나의 옛 자아는 이 땅에서 나의 행위를 책에 계속 기록하면서 살게 되죠. 즉 나의 행위를 쌓고 공로를 쌓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그 행위의 진위여부를 보게 하시면 그 모두가 거짓, 위선, 속임, 나태 등등으로 드러나면서 나의 옛 자아는 심판받게 됩니다. 이때 이사야처럼 '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 ' 라는 고백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로마서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고로 나는 사망과 음부에 던져져야 하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책에 기록된 존재이므로 멸망이 아닌 구원을 얻게 되죠. 이런 식으로 나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거듭난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사망과 음부 그 자체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나옵니다. 즉 선택받은 자들도 원래 그 행위대로라면 사망과 음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택받은 자들은 생명책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가야 할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지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가 선택받은 자들을 삼킬 수 없다는 의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