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21:3-4(24.12.03.화)

은혜바라기 2024. 12. 3. 08:36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21-22장은 계속 천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국은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관계의 개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인간이 구원을 받아 다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이 가능합니다. 고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적인 메커니즘의 영역이므로 인간이 온전하게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성경은 천국을 눈에 보이는 '장소'로 설명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천국을 상상할 때 보물이 많고, 먹을 것도 풍성하고, 아프지 않고, 괴롭지 않고, 늘 편안한 곳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분히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맞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천국= 행복’이라는 것을 설명하신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천국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가장 작은 상징일 뿐입니다. 참 천국의 개념과 좀 더 가까운 단어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선택받은 자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한 몸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던 원래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죠. 

 그래서 3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라는 구절도 함께 있다는 관계가 초점입니다. 아닌데~~ 장막이라는 장소도 있는데~~ 라고 의문이 드시죠? 구약의 장막(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들어 있는 선택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장막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로 표현한 것입니다. 장막조차 예수님과 선택받은 자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라는 것이죠. 

 이후 3절 중반 이후를 보면 더 뚜렷합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꼐 계셔서’ 라고 나옵니다. 계속 하나님과 선택받은 자들의 관계로 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녀 연인이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남자는 그 여행의 목적이 ‘동해안에 간다’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그 여행의 목적이 ‘그 남자와 함께 간다’에 있습니다. 남자는 장소가 목적이지만 여자는 관계가 목적인 것이죠. 이 차이로 이해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후 4절 보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연합된 교회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도 없고, 애통도 없고, 사망도 없고, 아픈 것도 없으며 처음 것이 다 지나갔다고 하죠. 여기서 처음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설명하시기 위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창조와 멸망은 처음부터 한 세트입니다. 이 세상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시적인 공간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선택받은 자들을 찾으셔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려주시면 이 세상은 그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실체(예수님)를 설명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상징은 그 목적을 다 하면 조용히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영원히 한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이 땅에서는 정확히 모릅니다. 단 영원히 행복하다는 것은 알죠. 가장 근접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입니다. 심지어 남녀가 육체적 관계를 가질 때 매우 행복하도록 만드신 이유도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 될 때 ‘완벽한 행복(천국)’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 줄 몰랐죠? 

 물론 이 세상의 결혼은 너무 하자가 많습니다. 죄인과 죄인이 만나 저주받은 환경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관계이며 이 세상은 늘 결핍되어 있는 저주 받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감당이 안 되면 헤어집니다. 여기서 헤어진다는 것은 실제 법적 이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붕에서 법적 부부로 살지만 많은 부분에서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말없음, 삐짐, 왕따, 냉대함, 싸움, 학대, 가스라이팅, 책임 미루기 등등 수 많은 형태의 거리두기가 존재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택받은 자들은 이렇게 부족하고 결핍한 남편을 통해 완전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의 진짜 결혼인 예수님과 나의 만남은 의인과 의인(칭의)이 만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게 됩니다. 그곳은 단 1초도 예수님과 헤어짐이 없습니다. 그곳은 단 1개의 결핍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80년 인생은 이런 예수님과 잠시 떨어져 사는 나는 얼마나 결핍한가? 얼마나 비참한가? 얼마나 심령이 가난한가? 얼마나 애통한가?를 알게 되어 다시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게 되는 기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