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21:1-2(24.12.02.월)

은혜바라기 2024. 12. 2. 08:16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 계시록 마지막 21-22장은 천국에 대한 묘사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실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할 천국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관계의 개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관계가 완벽하게 회복된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가 된 교회도 그 세 분의 관계 속으로 합류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 관계로 지음받은 인간(아담&하와)은 그 관계를 버리고 스스로 더 나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짧게 말하면, 인간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선악과 에피소드에 잘 나타나 있죠.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선택 결과는 ‘지옥’이죠.

 이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모든 인간을 멸망시키고 새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노아의 방주’ 에피소드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여주면서 차원이 다른 구원 방법을 제시하셨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택하신 백성과 연합(구원)하여 진정한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잡한 방법을 선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왜 선택받은 자들과 유기된 자들이 나누어질까? 당연히 하나님 마음대로가 답이지만 이것도 복음적 이유로 설명이 됩니다. 모든 인간을 단 한 명(아담)으로 산정하면 복음적 해답이 보입니다. 

 원래는 죄인 된 아담을 소멸시키고 다시 만드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신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고 했죠. 하지만 아담은 이미 절대 고쳐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애초에 하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즉, 가장 좋은 환경에서 아담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인간은 언제라도 하나님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이 결코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다는 것과 결론이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둘로 나눈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영적인 메카니즘 영역이기 때문에 논리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천천히 묵상하면서 잘 따라오세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옛 자아와 거듭난 자아로 나누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이때 사용하신 것이 짐승을 희생시켜 그 짐승의 가죽으로 아담의 부끄러움(죄)을 덮는 것이였죠. 이때 희생된 짐승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은 눈치 채셨죠? 고로 아담은 죄인으로써의 아담과 예수님과 연합된 아담 두 가지 자아가 존재합니다. 성경에서 전자는 옛 자아라고 하고 후자는 거듭난 자아(새로운 피조물)라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 몸에 두 자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아담을 둘로 쪼개서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영적 개념으로 이해하시면서 따라오세요. 

 그래서 아담의 옛 자아는 죄인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는 것이죠. 하지만 아담의 거듭난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피조물로 연합되어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아담은 한 명이지만 그 아담의 허리에는 모든 인류가 다 들어 있죠. 그래서 아담의 옛 자아의 계보는 잇는 족보와 아담의 거듭난 자아의 계보는 잇는 족보 이 두 가지 큰 족보의 흐름으로 역사가 흘러갑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전자의 대표로 가인이 태어나고 후자의 대표로 셋이 태어나죠. 이때 중간에 태어나 가인에게 죽고 셋의 탄생을 유도한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고로 가인의 후예는 유기된 자들의 상징하게 되고 셋의 후예는 선택받은 자들의 상징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이 세상에서 유기된 자들로 태어난 자들은 아담의 옛 자아의 후예들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선택받은 자들은 아담의 거듭난 자아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영적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 개개인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이 세상에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내동댕이 쳐질 때 무조건 옛 자아로 살게 됩니다. 이후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너는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복음을 통해 알려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선택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알아가게 되면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증상이 나타나죠. 반대로 유기된 자들은 인본주의 가치만을 소망합니다. 

 그래서 유기된 자들의 대표 가인의 후손 에녹은 최초의 인본주의 성(에녹성)을 쌓습니다. 인본주의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죠.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의 대표 셋의 후손 에녹(이름이 같다는 것도 재밌죠?)은 종말을 대비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않는 자, 즉 구원받은 자가 되죠.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오셨지만 실제로는 온 역사 속에 다 계셨습니다. 그 분은 온 역사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다 찾으시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정체성, 즉 십자가의 정체성을 알려주시면서 새로운 피조물로 천국을 지어가는 중이시죠.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머리와 지체의 관계가 되어간다. 즉, 한 몸이 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연합의 관계는 영이 분리된 채 타락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 땅을 창조해서 설명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1절을 보면, 천국의 완성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면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처음 바다가 다 없어진다고 나오죠. 즉, 우리가 생각하는 ‘장소’의 개념은 사라지고 오직 영적 관계 개념으로써의 참 천국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고로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천국의 완성을 설명하는 표지판으로써 잠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쓰임이 다하면 조용히 살아져야 하는 운명이죠. 그래서  천지창조와 멸망은 한 세트로 지음 바 된 것입니다. 

 2절에는 천국을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하면서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나옵니다. 남편은 예수님, 신부는 교회입니다. 여기서도 천국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살명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단장하는 것이라고 하죠. 관계를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