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당분간 서론에서 요한 계시록을 전체적으로 분류 & 요약 & 반복합니다. 한 번 읽으신 분은 [[ 이중괄호 ]]를 생략하고 묵상하시면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예언서가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복음적 관점에서 묵시 문학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와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날 같은 방향성의 사건은 계속 일어나지만 그것은 초점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무서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미리 그 내용을 이야기해줌으로써 복음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평강을 얻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일곱 교회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숫자 7은 복음적 완전수이기 때문에 일곱 개의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 선택받은 모든 사람의 완전한 모임을 의미합니다. (묵시에서 완성된 참 교회를 의미하죠.)
이후 7인, 7나팔, 7대접의 고난이 나오죠. 인은 ‘은닉속성’ 나팔은 ’알림속성‘ 대접은 ’준비속성‘을 의미합니다. 7은 복음적 완전수라고 했으니 복음이 은닉속성, 알림속성, 준비속성을 가지고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담겨 선택받은 자들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요한계시록1~16장입니다. 숲이 아닌 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분류해서 설명하듯 고난을 통한 복음의 메시지를 숫자1234567로 나누고 각각의 숫자의 속성을 이용해 설명한 것이죠.
이후 17장 부터는 나무가 아닌 숲은 보면서 전체적인 복음적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17장은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붙잡고 있는 죄의 본질인 인본주의 정체에 관하여..
18장은 그런 인본주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하여..
19장은 그런 인본주의가 심판되면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20장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천년 왕국으로 비유하면서..
21장~22장은 결국 완성되는 예수님 나라의 모습으로 요한 계시록은 끝을 맺습니다. ]]
천년은 구체적인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000이라는 완전수의 속성을 가져와서 복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천년이란 온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완성된 모든 기간을 의미합니다.
모든 선택받은 자들은 묵시 속에서는 이미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을 전의 본문에서는 24장로가 천국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을 했죠. 교회의 숫자 12가 증명의 숫자 2와 곱해져서 완전하게 증명된 참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혹은 구약의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하는 12지파와 신약의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하는 12제자의 합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 12*12*1,000=144,000명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보좌들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즉, 선택받은 모든 자들이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오직 심판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가지고 있으신데 왜 선택받은 자들도 그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까요? 그 이유는 선택받은 자들이 듣고, 보고, 알게 된 ‘복음’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령께 들어서 알게 된 복음의 전파로 구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무리는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알게 되어 구원의 길에 서게 되지만 나머지 다수는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의 길에 서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섭죠?
이후 4절 후반절은 선택받은 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를 증거한다는 것은 방금 이야기한 ‘복음의 전달’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다는 것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본주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즉 모든 역사 내내 왕 노릇 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셨으며 그 분을 설명하기 위해 지음받은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죠. 고로 이 세상은 모두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천년의 역사, 즉 완전한 구속역사로 볼 수 있으며 선택받은 자들은 ‘왕’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5절에서 이런 선택받은 자들의 삶을 ‘첫째 부활’이라고 명명하죠.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인이 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자입니다. 좀비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좀비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이것을 설명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되면 예수님의 지체가 되면서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고 나옵니다. 천년은 어떤 구체적 기간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유기된 자들은 그들의 인생 동안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게 되어 멸망받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선택받은 자들은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나옵니다. 둘째 사망은 완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 최종적 심판에서 벗어 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로 그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나오죠. 이 세상은 전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왕’이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선택받은 자들은 알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하나님께 드리는 존재가 되면서 제사장의 위치까지 갖게 됩니다.
하지만 제사장과 왕의 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 분이 교회의 첫 열매로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오직 그 분만이 참 왕이시오. 참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되어 믿고 고백함으로써 그 분의 왕 되심과 대제사장 되심에 공짜로 참여 되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