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21:5-7(24.12.04.수)

은혜바라기 2024. 12. 4. 08:08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5절에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후서에 보면 더 자세히 나옵니다.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늘 본문 6절도 고후5:17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언급하셨죠. 어디일까요? ‘생명수’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주나요? ‘목마른 자’입니다. 이 대목에 집중하세요. 

 선택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생수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입니다. 그러려면 나의 죄 된 상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라는 정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시간만이라도 우리의 죄 됨을 파헤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시간에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법’을 가르치죠. 하지만 우리는 절대 훌륭한 신앙인이 되지 못합니다. 외식하는 것을 훌륭한 신앙이 되는 것으로 착각 할 뿐이죠. 오히려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이 죄인을 넘어 괴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더욱 예수님의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은 이 세상의 법칙과 정 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유기된 자들은 거짓에 속아 항상 자신을 외식으로 치장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지역 교회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오직 교회는 ‘예수님은 누구인가?’만을 궁금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설교를 잘 들어보세요. 본질적이고 유일해야 할 이 질문은 없거나 교묘히 그냥 흘려보냅니다. 그 이유는 본인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면 다른 것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설교는 매우 교묘하게 예수님이 아닌 ‘나’를 기준합니다. 즉, 예수님을 살짝 거론하면서 그런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는 000을 해야 한다~~ 라고 방향을 비틀죠. 행위 인과율에 중독된 우리는 이런 설교에 모두 넘어갑니다. 우리가 늘 참고해야 할 두 가지 성경적 예시를 볼까요? 

 첫째 예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려고 하는데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하죠. 그 이유는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 줘야 한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행위 인과율에 중독된 우리는 이렇게 말한 베드로가 엄청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그렇다면 너는 나와 상관없는 자란다~~’ 라고 답변하시죠. 

 둘째 예시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는 굳은 다짐을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예수님을 지키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시죠. 

 선택받은 자들도 이런 인본주의 선에 다 넘어갑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눈을 뜨게 하여 깨어 있지 않으면 다 넘어갑니다. 복음은 단순하고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인본주의 유혹에 항상 넘어가죠. 그래서 쉬지않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생각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하고 생활 속에서 복음을 생각하는 것을 기도하고 할 수 있죠. 쉬지말고 묵상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는 것은 모든 인류 역사와 온 우주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류 역사와 온 우주, 온 세상 만물 조차 ‘예수님이 누구인가?’만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왠만한 교회 목사 보다 낫죠. 심지어 성경은 단 한 구절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품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회복을 천국이라고 하죠. 그래서 7절 보면 천국을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라는 관계적 측면을 설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