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진짜 세상의 시작은 창세기가 아니라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부터 입니다. 이런 세계관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진짜 의도하신 창조는 진행중(ing)입니다. 성부,성자,성령 세 분 하나님께서 영원히 존재할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도 만들고 있는 중이시죠. 그런 하나님 나라는 선택받은 자들로 채워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 땅에 투영하여 의미적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창세기 1장부터 입니다. 나중된 것이 처음이고 처음된 것이 나중이죠.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도구이며 상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순간 그 도구는 조용히 물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 창조와 멸망을 한 세트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원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멸망할 세상을 창조하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참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세상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되죠.
최초의 사람은 아담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당시 아담의 허리에 존재했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나오도록 계획되어져 있다고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런 아담이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허리에 있던 모든 인간들도 죄인으로 시작합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던 사람이 자신(사람)의 기준대로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기준이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사람)에게로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인간본위로 살게 된 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먹게 되죠. 아담은 선악과를 먹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 되어서 선악과를 먹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 에피소드는 인간이 죄인이 된 과정을 빠른 화면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선악과 에피소드는 숨겨져 있는 복음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여자(하와)입니다. 여자는 교회의 상징이죠. 여자가 선악과를 아담에게 주어 아담이 먹게 되는데 이상하리만큼 아담은 하와를 나무라지도 않고 무비판적으로 선악과를 먹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이유는 당시 아담은 하나님과 바로 대화 할 정도로 완벽하게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완벽하게 지혜로웠으며 세상을 다스릴 정도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한 선악과를 무비판적으로 왜 먹었을까요?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영적으로 죽어버린 죄인된 여자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고 죄인된 우리가 받아야 할 십자가의 멍에를 선택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예수님)의 계획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진짜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인간은 반드시 ‘죄인’이 되어야 하죠. 이게 너무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인본주의 인과율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조금 이해하기 쉽게 풀어 볼께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같이 영원히 살 선택받은 자들은 피조물이지만 그 신분이 예수님과 같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은 다르지만 신분은 동일하게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로봇과 애완동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조차 배신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닌 신분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였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조차 알고 계셨고 이에 대한 계획으로 ‘복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자로 내려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대가로 모든 선택받은 자들을 품에 안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신다는 스토리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하죠. 그래서 '복음'을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싶은 진짜 나라는 하나님의 창조능력으로 만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든 세상입니다.
아담은 총 세 개의 정체성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 정체성은 하나님께 선택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정체성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분리된 자아입니다. 세 번째 정체성은 희생된 짐승의 옷을 입고 용서받은 자아입니다.
아담의 세 아들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선택된 자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의미하죠. 가인은 하나님을 배신한 우리의 옛 자아를 의미합니다. 셋은 아벨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로 선택받은 우리의 거듭난 자아를 의미합니다.
이후 아담의 모든 후손도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의 큰 흐름과 멸망받을 옛 자아의 큰 흐름으로 나누어 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됩니다. 선택받은 자로 이 땅에 태어나지만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살아가죠. 그러다가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복음을 알려주시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거듭나게 됩니다.
이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유기된 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아담의 옛 자아들에 해당하죠.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입니다. 이들은 평생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인간)을 위한 삶만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인간 본위의 삶을 사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땅을 상징하는 인본주의에 끝까지 묶여 있는 삶을 살게 되죠. 이것을 땅 지 묶일 옥 지옥이라고 합니다.
물론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옛 자아로 살면서 인본주의에 묶인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복음’으로 인본주의 사슬을 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되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