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1:6-8(24.12.20.금)

은혜바라기 2024. 12. 20. 08:33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장면은 구약의 엘리야를 연상시키기 위한 모습입니다. 요한과 엘리야는 다른 사람이지만 복음적으로 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슨 역활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의 역할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 모든 선지자 혹은 모든 선지자의 말씀, 즉, 구약의 모든 것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기 위한 표지판이라는 것입니다. 

 ‘낙타털 옷, 가죽 띠, 메뚜기, 석청’ 단어 하나 하나를 역사적, 문화적으로 연구하여 그것을 복음으로 풀어 내는 방식도 옳은 방식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 해석에만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하다 보니 길을 잃어버리죠. 우리는 조금 쉽게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의 물건들은 모두 광야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즉, ‘광야의 삶’에 완벽하게 속해 있는 삶을 뜻합니다. 복음적으로 광야는 선택받은 백성이 꼭 거쳐야하는 과정이죠. 출애굽을 하게 되면 바로 광야의 삶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인본주의적 삶의 가치를 잃고 마음이 가난해진 자의 삶을 뜻 합니다.

 7절을 보면, 요한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심지어 8절을 보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라는 고백을 하는데 이 의미는 인간이 주는 물세례는 상징일 뿐이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참 세례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죠. 이 부분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므로 조금 더 자세히 묵상을 해보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참 세례란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인본주의와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게 하신 것,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떠나게 하신 것,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떠나게 하신 것 이 모든 에피소드는 선택받은 자들은 인본주의와 분리되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로 애굽과 분리되면서 죽음을 면합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본주의와 분리되어 구원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도망치지만 애굽의 군사가 쫓아오죠. 이것은 사탄이 움직이는 인본주의가  선택받은 자들을 다시 확보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애굽은 홍해에서 모두 수장됩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과 인본주의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의미적 순서를 시간적 순서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실제 선택받은 자들의 삶에서는 이 모든 것은 시간의 순서 없이 늘 삶에서 반복하여 일어납니다. 

 

 홍해로 들어가는 것은 인본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죽음’입니다. 실제로 애굽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홍해로 들어갔다가 다 죽었죠. 이때 애굽은 인본주의를 의미하지만 본질은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나의 옛 자아입니다. 반대로 홍해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본질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나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간소화한 것이 세례입니다. 

 고로 세례는 나의 옛 자아의 심판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나를 동시에 설명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교회에서 머리에 물 끼얹는 것으로만 의미를 두지 마십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씻는 과정도 실제 하나님께 세례의 의미를 계속 반복하여 설명하려고 만드신 시스템입니다. 생활 속 청결이란 오물 묻은 손을 물로 씻으면 오물과 손이 분리되어 손이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죠. 이때  오물은 심판은 손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런 청결 행위를 종교적 단어로 바꾼 것이 정결이고 영적 단어로 바꾼 것이 성결입니다. 이것을 규례로 만든 것이 세례이며 이것을 성품으로 나타낸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사전에서 찾아보면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의미는 주님께서는 인본주의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곳에서 분리되어  오직 복음의 세상에 계시므로 너희도 인본주의와 분리되어 오직 복음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복음에 속한다라는 것은 예수님의 품을 의미하죠. 

 종합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탈출 역사, 포로  역사와 함께 할례, 세례, 청결, 정결, 청결, 성결, 거룩 등등 이 모든 것은 인본주의와 분리되어 예수님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회개’라는 단어도 포함되죠. 회개의 본질은 ‘돌이킴’인데 어떤 돌이킴일까요? 원래 예수님의 신부로 지음받은 교회가 인본주의에 묶여 있다가 그것에서 분리되어 다시 예순님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반성과는 다릅니다. 반성은 도둑질한 사람이 다시는 도둑질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 인본주의 악에서 인본주의 선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이 부분을 헤깔려 하죠. 회개는 인본주의 그 자체를 악으로 보고 그 자체를 떠나 예수님만 소망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수 천번의 반성을 거친 후 회개가 일어납니다. 즉,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지만 결국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 자체가 절대부패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진정한 필요성을 알게 되죠. 

 또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해서 잘 지켰는데 알고보니 이 율법의 본질은 형제를 미워만 해도 살인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심으로써 인간은 절대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구나~~를 알게 되어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됩니다. 

 이때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 나는 그래도 남들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아~~ 등등의 기준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진정한 세례는 머리에 물 바른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눈을 뜨게하여 인본주의 실체를 알게 하므로 인본주의 가치를 상실하게 하시고 복음을 보게 하여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합니다. 

 

끝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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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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