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오늘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3가지 시험에 관하여 묵상해보죠. 혹시 어제 묵상을 못 하신 분들은 어제 묵상을 먼저 하고 오셔야 이해가 쉽습니다.
일단 먼저 알아 두셔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정확하게 세 가지가 아니라 여섯 가지입니다. 즉, 각각의 시험마다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자 예수님이란 뜻은 홍길동 예수님 이라고 했죠. 즉, 나(선택 받은 각자) 예수님 이라는 뜻입니다. 광야 시험은 나 대신 시험을 받으신 부분과 예수님의 시험이 동시에 섞여 있습니다. 나 대신 시험을 받으신 것을 편의상 땅의 시험이라고 부르고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을 하늘의 시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첫 번째 시험은 인간의 ‘식(의식주:재물)’에 대한 시험이죠. 일단 인본주의 종교식 해석부터 뭉개버리고 가죠. 절대 하지 말아야할 해석은 바로 ‘예수님이 의식주 시험을 이겨내셨으니 우리도 노력하여 의식주 시험을 이겨내자’입니다. 이런 해석은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신 우리의 연약함을 다시 빼앗아서 나의 노력으로 나의 가치를 드러내자는 꼴이죠. 이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닦아 주려는데 베드로가 내가 닦아 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그러면 너는 나와 상관없다.’라고 하죠. 이 부분만 잘 묵상하셔도 복음을 완전히 알게 됩니다.
이 첫 번째 시험에서 땅의 시험은 우리가 인본주의 내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의식주’ 시험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고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죠? 그러면 하늘의 시험은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의 인자로써의 자격에 대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삶을 사셨죠. 즉 죄인을 대표해서 이 땅에 오셔서 두 가지를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첫째는 죄의 댓가인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과 둘째는 완벽하게 율법을 다 이루어 내신 것이죠.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전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완벽하게 죄된 인간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으로써의 모든 권한이 놓으시고 오직 인자 예수님으로써 죄된 인간의 대표 자격으로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3가지 시험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늘의 시험은 이 자격을 시험하는 것이죠. 마귀의 공격은 이렇게 고도의 이중 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은 광야시험을 잘 살펴보세요. 인간과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진 사탄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 치고는 너무 유치하지 않나요? 이런 것부터 우리는 항상 ‘의문’을 가져야합니다.
첫 번째 시험부터 조금 이상한 것이 느껴져야 합니다. 배고픈 예수님을 유혹하려면 ‘돌을 떡이 되게 하라’가 아니라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라면’을 등장 시킨 후 ‘이것을 먹어라’라는 시험을 해야 되죠.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이중 전략입니다. 즉, ‘식(의식주)’의 유혹을 이겨내게 하려는 시험을 치루면서도 사탄이 구상하는 전개는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변화시킨 후 “이렇게 돌을 떡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나는 그 떡을 먹지 않겠다.”의 선언을 유도한 것이죠. 그런데 만약 이런 전략이 통하게 된다면 예수님은 ’인자‘로써의 자격이 상실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기적을 제외하고 예수님이 스스로의 신분(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기적과 능력은 그 순간 인자 예수님을 포기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복음의 스토리가 끝나게 되죠.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도 없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사탄의 치밀한 이중 전략입니다.
이 첫 번째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죠. 예수님도 이중적 대답으로 마감 하셨습니다. 땅의 시험으로써의 대답은 ‘음식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입니다. 하늘의 시험으로써의 대답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복음이며 이 복음의 계획에 맞추어 순종하는 것이 내가 지금 떡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라는 말이죠.
두 번째 시험을 보죠.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 부분에서 땅의 시험은 ‘인기와 명예’입니다. 성전 꼭대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인기 있는 자리를 뜻하죠. 그것 차제가 인기와 명예를 뜻합니다. 그리고 뛰어 내리지만 만일 아무렇치 않게 설 수 있다면 그 인기와 명예는 더 올라가겠죠.
이 두 번째 시험 중 하늘의 시험도 바로 인자 예수님의 자격 박탈을 위한 사탄의 계략입니다. 이 두 번째 시험은 완벽하게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전략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적으로 성전의 꼭대기에 계신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뛰어 내려도 천사들이 수종들 것이 뻔하죠. 더불어 땅에 넘어져 죽으실 분도 아니죠. 모두 다 사실에 근거한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이 중 하나라도 ‘인정’이 되는 표현(행위)이 된다면 그 순간 인자 예수님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죠. 매우 치밀한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 두 번째 시험에 대한 대답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입니다. 이것도 땅의 시험과 하늘의 시험 둘 다 충족한 대답입니다. 특히 사실에 근거한 시험이라도 하나님의 계획인 복음을 훼손하는 계략을 짜지 말라는 뜻이죠.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입니다. 땅의 시험으로는 ‘권력’에 대한 시험이죠. 그러나 하늘의 시험은 조금 더 차원이 다릅니다. 두 번째 시험이 사실을 가지고 시험 한 것이라면 세 번째 시험은 거짓을 가지고 시험하고 있죠. ‘천하 만국’은 모두 예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귀가 자기 것 처럼 뒤집죠. 또한 창조자에게 피조물한테 경배하라고 하죠. 이 때 마귀가 노린 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만든 것을 왜 너가 만든 것 처럼 주장하느냐?’라는 표현(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 인자 예수님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죠.
이 세 번째 시험에 대한 대답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입니다. 땅의 시험으로써의 대답은 ‘인본주의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권력만이 경배의 대상’이라고 대답하신 것이고 하늘의 시험으로써의 대답은 ‘권력의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원래 가진 모든 권력을 놓고 오신 것을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이 세가지 시험의 예수님 대답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자 예수님으로써의 자격이 ‘순종’이라는 큰 맥락에서 시험 통과라는 대 주제로 연결이 되는 것이죠.
이 같은 치밀한 광야시험에 대한 복음적인 해석을 하지 않고 단지 ‘의식주, 인기.명예, 권력을 이기려면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물리치자’라고 이해하고 성경을 삶에 적용시켜 봐야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분명 성경은 말씀으로 이것들을 이겨내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안되지?’에 대부분 멈춰있죠. 전혀 다른 본질을 이해하거나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광야시험은 1차적으로는 인간을 대신하여 시험을 받는 예수님의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인자 예수님으로써의 자격을 박탈시키려는 치밀한 사탄의 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탄의 계략도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죠. 즉, 이런 치밀하고도 완벽한 사탄의 공격과 예수님의 답변이 오히려 '예수님의 순종’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예수님의 전인생을 완벽하게 복음의 계획에 맞추어 ‘순종’하면서 사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죠.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광야시험은 예수님의 전인생을 미리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했죠.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순종하고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마귀)를 심판하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가리키는 구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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