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5:1-3(21.08.16.월)

은혜바라기 2021. 8. 16. 09:17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오늘부터 예수님의 복음 전파의 첫 사역인 산상수훈이 시작 됩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은 사건과 동일한 배경입니다. 구약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1부터 5계명까지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부연설명을 달아 놓으셨죠. 그런데 6계명부터는 부연설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보면 서론을 지나가면 제 6계명부터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의 바통을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이어 받으신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죠. 이런 장면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죠. 

 산상수훈의 서론은 8복 그리고 ‘빛과 소금’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선택된 자들과 예수님의 관계 그리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잘 파악하시고 복음의 눈으로 잘 따라오세요. 이 산상수훈만 정확히 이해하시면 복음을 전부 다 이해하신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나머지 복음서의 내용은 전부 이 산상수훈에서 말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이 후 성경의 서신서들은 복음을 알게 되어도 인본주의와 같이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경고이며 이런 삶이 어떤 식으로 오게 되는 지에 대한 예고편이 요한계시록이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뜻은 인본주의 가치를 잃어버린 자를 뜻합니다. 이 세상은 전부 인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죠. 인본주의는 사실 개인주의의 확장형입니다. 인간은 전부 다 자기를 위해 살죠. 그러다가 공동체(가족, 교회, 회사, 나라, 전 인류)를 만나서 그 공동체를 위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는 사실 ‘나의 확장형’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매우 고결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식이라는 ‘확장된 나’를 위한 것 뿐 입니다. 자식이 곧 나의 일부라는 본능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생기는 공동체 의식이죠. 그런데 만약 ‘자식이 확장된 나’라는 본능이 없어지거나 약해지면 부모는 언제라도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죠. 결국 고결해 보이는 부모의 희생도 모두 ‘확장된 나’에서 출발한 것 뿐 입니다. 이런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한국을 응원하고 싶은 생각은 결국 ‘한국을 확장된 나’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나’혹은 ‘확장된 나’를 위해 사는 삶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남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서 봉사하는 자들은 매우 휼륭한 사람이죠. 그러나 그들은 ‘재산’이라는 가치 보다 ‘명예’라는 가치를 더 크게 여기는 것 뿐이죠. 결국 모든 사람은 돈, 인기, 명예, 권력, 인간관계, 지위 등등 여러 형태의 인본주의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죠. 즉, 수 십 수 백 가지의 ‘인본주의 가치’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 인본주의는 지금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집니다. 어느 날 동그란 모양(공)을 네모난 그물(골대)에 잘 넣는 것 (축구)이 새로운 인본주의 가치로 만들어지면서 바벨탑의 꼭대기로 등극하기도 하죠. 가수 싸이는 단 몇 분짜리 코믹한 노래를 만들어서 전 세계의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에 오르고 몇 대가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재물’이라는 가치를 얻었죠. 이런 것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되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이런 것들을 통해 오히려 인본주의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복 있는 자(복음을 알게 되는 자)는 이러한 인본주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애굽이라는 인본주의 묶여 살다가 그 땅에서 분리되어 출애굽하여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내몰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는 앞으로 ‘가나안 땅’인 천국이 약속되어 있죠.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400년을 ‘포로’로 산 것은 인본주의에 완벽하게 묶여 산 것을 설명하기 위한 무대 장치일 뿐입니다. 4란 '땅'의 숫자죠. 이 땅에서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것을 뜻해요.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 천국을 가기 위해서 인본주의를 버리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됩시다.’ 라고 해석을 하는 것도 틀립니다. 원래 헬라어 원본에 적혀 있는 이 말씀의 순서는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고 되어 있죠. 즉, 우리가 인본주의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선택된 자들 즉, 복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인본주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어느 순간 ‘광야’로 내몰린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드리면, ‘인본주의 가치를 버려라 그래야 복음을 알게 된다.’ 가 아니고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인본주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라는 뜻이죠. 

 ‘복 있는 자’란 복음의 계획에 들어 있는 자를 뜻하고 이렇게 복음의 계획에 들어 있는 자는 천국을 가게 된다고 약속하시죠. 그런데 이런 자들이 필히 겪을 수 밖에 없는 공통된 과정 한가지는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출애굽을 하여 광야로 내몰리는 것’과 같은 이야기죠. 이것은 바로 ‘인본주의와 분리됨’을 뜻합니다. 이 인본주의의 정체가 바로 ‘죄’ 즉, ‘선악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관해서는 오늘 말씀이 매우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으로 여러번 반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인본주의와의 분리(가치 상실 =심령이 가난해짐)’에 대한 묵상은 삶 속에서 항상 이행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허무주의의 색깔로 비칠 수 있죠. 그러나 8복에 대한 설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전 인생이 인본주의에 묶여 있다가 그 가치를 상실한 채 끝까지 방치되는 자들은 당연히 허무주의, 공황장애, 우울감이 지배하겠죠. 그러나 복음의 계획에 들어 있는 자들은 8복의 시작점에 불과 합니다. 내일부터 어떤 단계들이 있는지 하나 하나 묵상해보죠. 

 끝.

'마태복음(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5:7-12(21.08.18.수)  (1) 2021.08.18
마5:4-5(21.08.17.화)  (0) 2021.08.17
마4:18-25(21.08.13.금)  (0) 2021.08.13
마4:12-17(21.08.12.목)  (1) 2021.08.12
마4:3-11(21.08.11.수)  (1)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