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성경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 것이 아니요’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죠.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께 ‘주여~’라고 부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것과 구원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천국에 들어가 갈 수가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가리키는 것은 '그러니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라'라는 뜻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주여~~ 주여~~ '를 외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죠.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채 이런 모양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완벽하게 인본주의 종교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종교라함은 인간이 만든 종교란 뜻이며 참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전부 인간이 만든 인본주의 종교일 뿐입니다 .
이런 인본주의 종교의 형식은 모두 동일합니다. '신'을 만들어 놓고 규칙(경전)을 만들어 그 신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면 '잘 살기'를 할 수 있게 되죠. 이 '신'의 자리에 부처가 들어가면 불교, 알라가 들어가면 이슬람교, 천지신명이 들어가면 우리의 옛 토속신앙, 심지어 인도는 1000개가 넘는 신을 모시는 나라죠. 그런데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이러한 인본주의 종교의 형식에서 '신'의 자리에 '하나님'만 바꾸어 놓고 똑같이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성경적 경고가 바로 십계명 중 제 3계명입니다. 보통 우리는 1, 2계명은 조금 이해를 하고 있지만 제 3계명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의 제 3계명은 우리가 인본주의 종교에서 그 신의 이름을 부르며 섬기듯 그 신의 자리에 하나님으로 명칭만 바꾸어서 이름을 부르며 섬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종교는 전부 ‘우상 숭배’ 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의 진정한 실체는 바로 ‘나’ 입니다. 즉, 자기 안의 죄 된 자아가 바라는 바를 구체화 시켜서 외부로 꺼내어 형상화 시켜서 그것에 다시 소원을 빌면서 자기의 바라는 바를 간구하는 것이죠. 그러니 그 자리에 하나님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행위를 하나님은 ‘망령되다’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참 기독교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종교는 그 신의 이름만 다를 뿐 전부 다 똑같은 형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종교들을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형식에 머물러 있죠. 지금 대부분 교회가 이 종교라는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놓고 인본주의 종교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의 제 3계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면,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목사, 장로, 선교사, 집사, 교사...)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많은 능력들)을 행한다 해도 주님은 ‘도무지 너를 모른다’고 선언하시죠. 더불어 이런 모든 것들은 ‘불법’이라고 선언합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더 아프게 말해 드릴까요? “내가 목사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을 ‘불법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참기독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궁금하시죠? 그런데 2천년 전에도 12제자들이 예수님께 이것을 똑같이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다 보면 인본주의에서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반대로 가르치시니 제자들이 나중에는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궁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참복음’을 듣다 보면 결국 미궁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뭘 해야 하나 ??’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예수님이 완벽하게 대답을 해주십니다.
요한복음6장28-29절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너무나 자명하죠?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전부 예수님께서 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이 유일한 일이죠. 그래서 이것이 바로 복된 소식 즉, 복음입니다. 이 요한복음 6장29절 하반절은 가능한 외우고 다니십시오. 마음에 품고 다니세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이 날 때 마다 이 구절을 꺼내서 묵상하십시오. "그렇다면 이게 다란 말인가? "라고 궁금하죠?
맞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 자체가 바로 이것을 알게 하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참삶'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써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죠. 이 땅의 80년 잠깐의 인생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을 이 땅에 갖두어 두려고 하죠. 그래서 이 땅에서 00을 지켜라. 00을 행해라. 00을 잘했다. 등등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 묶어버리려고 합니다. 이것을 '땅 지 갇둘 옥' 지옥이라고 하죠. 그런데 교회도 그러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죠. 제 묵상을 통해 조금이라도 복음에 눈을 뜨신 분들은 이 말이 얼마나 '누룩'된 말인지 알 것입니다.
이 말을 알아 듣는 분들은 정말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알아듣게 되는 것을 성경은 눈을 뜬다 혹은 거듭난다라고 표현하죠. 즉, 내가 예수님의 신부로써 찾아짐이 되었다는 증거죠.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복음을 깨닫게 됨'을 의미하므로 복음을 알게 된 분들이 정확하게 선택받은 자의 증거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예수님을 믿고 성화의 삶을 살아라' 라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말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복음에 눈을 뜨게 되면 완벽하게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걷게 되죠. 즉, 나는 절대 성화의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래서 예수님이 오셨구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죠. 그런데 이 앎(믿음)이 바로 내가 예수님의 신부(예수님의 찾으심)가 된 증거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이런 자들만이 왜 내가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릴 수가 없고 예수님이 내 발을 닦아 줄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된 자들이죠.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에서 ‘행하는 자’는 오직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며 우리쪽 방향에서 해석을 하게 된다면 ‘행하는 자’는 오직 ‘예수님을 믿은 자’를 말합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란 예수님이 전부 다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죠. 즉, 예수님만이 오직 천국이라는 반석이시며, 예수님만이 지혜로운 사람(구원의 완벽한 지혜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게 된 우리도 공짜로(나의 공로 없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예수님의 신부로 찾아짐)입니다. 그래서 복된 소식 즉, 복음입니다.
이렇게 오직 내가 아닌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는 것만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진리가 됩니다. 우리의 행위로 표현되는 신앙은 늘 상황에 따라 흔들리죠. 이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고 표현하셨죠. 우리가 아닌 예수님이 하실 때에만 그것이 ‘반석에 지은 집’이 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신앙을 해오시는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 '요즘 믿음이 떨어졌어, 요즘 신앙이 약해졌어' 입니다. 믿음의 주체를 내가 가진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지요. 믿음의 주체는 예수님입니다. 절대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죠. 고로 절대 믿음은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떨어지거나 성숙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은 '확장'만 있을 뿐입니다. 즉, 나의 인본주의 생각이 가나안과 같이 넓은 생각으로 포진되어 있는데 이곳으로 복음이 침투하여 한 부분씩 복음이 함락해 가는 과정입니다. 즉, 한번 깨닫게 된 복음 자체가 없어지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 복음으로 나의 인본주의 생각과 삶의 영역들이 한 부분씩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즉, 믿음의 확장, 복음의 확장입니다. 이 글을 읽고 눈을 뜬 분들의 남은 인생은 이 확장의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애굽이라는 인본주의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라는 명칭으로 인본주의 신을 만들어 '잘살기' 탑인 바벨탑의 꼭대기를 위해 빌고 비는 자들을 불쌍하게 바라보아야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