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9:18-25(21.10.05.화)

은혜바라기 2021. 10. 5. 08:3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오늘의 묵상은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 중간에 혈루증에 걸린 여자의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죠. 이것은 유대인의 문학기법 중에 샌드위치 기법이라는 표현입니다. 가운데 핵심 주제를 넣고 위, 아래로 그것을 설명하는 빵으로 완성시키는 기법이죠. 그래서 일단 그 핵심되는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의 에피소드를 먼저 살펴볼께요. 

 12해(12년)라는 의미는 ‘선택받은 자들의 전 인생’을 뜻합니다. 12라는 숫자는 땅의 숫자 4와 하늘의 숫자 3을 곱한 수죠. 즉, 땅에 살면서 복음을 알아듣게 되어 하늘의 복음을 볼 수 있게 된 자들이 바로 12인 제자들의 숫자, 12지파의 숫자 즉, 선택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숫자입니다. 그들의 ‘해’이기 때문에 결국 12해는 선택받은 자들의 전 인생을 뜻합니다. 즉, ‘12해 혈루증 앓는 여인’을 기적의 한정된 대상으로 보지 말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죄인의 인생으로 인식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혈루증 앓는 여자는 부정한 여자입니다. 혈루증은 피가 나와 멈추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의 대표적 증상이 ‘여자의 생리증상’이죠. 생리하는 여자의 상태를 구약은 ‘부정하다’라고 하죠. 심지어 애를 낳은 여자를 ‘부정하다’라고 합니다. 더더욱 여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이 부정한 기간이 두 배가 되죠. 매우 이상하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설명하시는 방법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너무 방대하여 다음에 한 번 다루죠. )

 정리해볼께요. 모든 인간은 이렇게 혈루증 앓은 여자와 같이 모두 ‘부정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죄인’이라는 뜻이죠. 이 여자의 행위를 보죠.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고 쓰여져 있죠.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 부분을 인본주의자들의 해석 방향과 복음의 해석 방향으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부분을 인본주의 종교인들의 해석 방식으로 풀어보면 ‘이 여자처럼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지극정성을 다해야 한다.’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복음의 방식으로 풀어보면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병치료)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은혜를 받은 여자’입니다. 이 여자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 그 이유죠. 즉,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러 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연히(하나님의 방향에서는 ‘섭리로’)알게 된 여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샌드위치 구조의 핵심입니다. 즉, 죽은 자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죄인이 오직 구원이 예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예수님과 만나게(접촉하게) 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인본주의 방식의 해석과 복음의 방향으로 본 해석의 차이를 잘 이해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대상일 뿐이죠. 그것을 알게 된 자들이 바로 복음에 눈을 뜬 자들입니다. 나의 행위에 신앙의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이것에서 빨리 벗어나십시오. 

 예수님의 선언을 보겠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여기서도 인본주의 해석은 ‘네 믿음(나의 믿음)’을 강조하여 ‘그러니 어서 더 믿음을 강하게 키워서 구원을 더 확실하게 이루어라!’로 해석을 하겠죠. 절대 아닙니다. 제가 수차례 말씀드렸듯이 ‘믿음’의 진짜 정의는 ‘복음을 알게 됨’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알고 있는 ‘믿음’은 참믿음을 설명하기 위한 표지판의 역할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된 믿음관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해석해보면 ‘선택받은 자여, 안심하라 너도 참 복음을 알게 되었구나.(복음의 핵심적 정의는 ’오직 구원은 예수님께 있음‘)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하시니 그 즉시 그 자는 구원에 포함된 자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많은 사람들은 오직 ‘병고침’의 기적 즉, ‘잘살기’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함정에 빠지죠.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이 에피소드의 위,아래로 ‘죽음자 살리기’라는 빵으로 덮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즉,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병고침’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가 살게 되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 즉, 구원에 대한 에피소드다’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이 죽은자를 살리는 장면 조차 ‘지극정성의 기도와 헌금의 노력으로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다. 오직 당신의 믿음에 달려있다.’로 바꾸어 버리죠. 인간은 이 인본주의 사고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방법 뿐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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