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고라신, 벳새다, 두로, 시돈, 가버나움 이 지명들이 주는 의미 자체는 크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초점은 인간은 예수님의 권능과 기적을 수 없이 목격해도 회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큰 흐름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회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 한가지 말씀도 지켜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것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은 매우 짧아도 됩니다. 주제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이 이렇게 긴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이 긴 이유는 그 만큼 인간은 ‘인간이 절대 무능, 절대 부패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개인, 가족, 부족, 공동체, 나라를 통해 계속 증명, 또 증명하신 것이죠. 그래서 결국 ‘너희는 예수님이 필요해,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해, 이것이 복음이란다.’를 알아듣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설명하시고, 또 설명하시고,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신 것이죠. 그래서 구약이 길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래도 안되니 직접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내용은 결국 구약의 주제를 짧게 반복한 것입니다. 즉, ‘너희는 어떠한 기적, 권능, 사건을 통해서도 복음을 알아들지 못한다’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오죠. 바로 하나님께서 숨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숨기셨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잘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곧 인본주의를 뜻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음을 숨기지 않고 나타낸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아이들의 의미가 뭘까요?
어린아이의 순수함? 이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아직도 인간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눈을 뜨지 못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완벽하게 악하게 태어납니다. 그냥 ‘죄덩어리’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그들의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봐줄만한 것이죠. 만약 어린아이들이 성인의 10배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은 곧 바로 멸망했겠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바로 ‘부모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돌봄 없이는 다 죽습니다. 어린아이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죠.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합니다.
이처럼 오늘 말씀은 ‘나는 예수님(하나님의 은혜)이 없으면 죽어요’를 아는 자(어린아이)만이 복음을 알아듣게 된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복음을 알아듣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미 결정하셨다는 것이죠.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만 알아듣게 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죠. (이 속성을 설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방언'입니다. (방언의 뜻 = 그 지역사람만 알아듣는 언어) 지금 현대의 방언은 전부 가짜 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의 모든 기적, 방언, 신유(치료)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설명한 성경이 복음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성경을 보충하여 다른 요소로 믿음을 더하게 하는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성경은 다른 것으로 보충될 수도 없고, 보충될 수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 한 방울만 더 떨어지면 흘러버릴 정도로 완벽한 물(은혜)이 꽉 차 있는 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재미있는 끝맺음을 보십시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죠. 이 말은 예수님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위치 즉, 순종의 위치를 고백하는 내용이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태초에 정해 놓으신 결과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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