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말씀도 인본주의에 묶여 있을 때에는 ‘집중하고 노력해서 잘 들어라~~’라고 알아듣죠. 그런데 복음의 진영에 들어온 자들은 ‘천국 백성으로 선택된 자들만 알아듣는 언어(복음)로 말할테니 이것을 들을 수 있는 자들만 들어라.~~’ 로 알아듣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비유를 보면 지금의 기독교가 얼마나 인본주의 종교화 되어 있는지 알게 됩니다. 오늘 이 유명한 비유의 말씀은 많은 목사들이 설교에서 자주 써먹는 비유입니다. 그들이 이 비유를 얼마나 인본주의 관점으로 이 용하고 있는지 그들이 하는 설교를 예로 들어보죠.
이들은 오늘의 말씀을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안는 것처럼 왜 너희 성도들은 설교를 듣고 반응하지 않는가? 왜 말씀을 듣고 감동하지도 않고, 봉사하지도 않고, 헌금을 하지 않는가?" 혹은 이말씀을 교회 밖 까지 확대시켜서 "왜 너희 세상사람들은 전도를 해도 반응이 없고, 왜 전도를 해도 교회에 오지도 않고, 왜 회개도 하지 않는가?"로 설교하죠. 완전히 엉터리 설교입니다. 완벽하게 인본주의 종교에 묶여서 '나'를 기준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설교를 듣는 성도들는 여기에 반응해서 신앙생활을 하죠. 잘 되지도 않는 신앙생활을 부담감 팍팍 느껴 가면서 말이죠.
이 말씀을 제대로 해석을 하려면 ‘오직 성경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보셔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되어야합니다. 그 안경을 쓰시고 천천히 따라오세요.
오늘의 비유에서 나온 ‘우리’의 정체가 바리새인이고 ‘춤을 추지 않거나 가슴을 치지 않는 너희’는 예수님(예수님의 지체)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반대로 해석을 하고 있었죠.
이것을 말씀에 대입해서 정리해보면 "우리 바리새인이 너희 예수님의 지체들에게 춤추라고 해도 왜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 바리새인이 너희 예수님의 지체들에게 슬퍼하라고 해도 너희는 왜 가슴을 치지 않느냐? "라는 뜻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죠? 그래도 조금 어렵나요? 그래서 그 다음절에서 예수님이 매우 친절하게 이 비유에 대하여 완벽하게 풀어주십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고 하시죠. 이 문장을 보시니 완벽하게 이해가 되시죠? 즉, ’요한과 예수님은 왜 우리가 시키는 대로, 우리의 규칙대로, 우리의 율법대로 안 하느냐?‘ 를 말하고 있는 바리새인(인본주의 종교인)을 비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 분명하게 보이시죠? 이 말씀은 "설교한 것을 따르지 못하는 성도들에 대한 비판" 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잘못된 설교(율법,규칙,제도)를 잘 이행하지 못한 성도들을 야단치는 목사에 대한 비판" 인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 목사들은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해서 자기 설교대로 이행 못하는 성도들을 야단치고 있죠. 말씀을 종교화시켜서 행위를 주장하고 그것을 잘 따르지 못하는 자들을 비판하죠. 불쌍하게도 성도들은 그것을 진리로 믿고 따르죠.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회심한 날 3일동안 눈이 멀게 됩니다.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의 첫 관문은 바로 '자신이 이제까지 눈먼 자'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