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2:22-28(21.11.04.목)

은혜바라기 2021. 11. 4. 09:03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왜 귀신들린 자, 눈 먼자,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시는지를 잘 알아 들으셔야합니다. 예수님은 몇 사람 병고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당시 병고침 받은 자들은 몇 년 후 혹은 몇 십년 후 다시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자들이 병들어 죽던 말던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 사람의 병든 상황과 그것을 회복시키는 행위가 복음을 설명하는데 적절한가? 만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간단합니다. 복음은 두가지를 이야기 하죠. 첫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둘째  오직 예수님이 전부 다 이루셨다. 입니다. 우리가 1%노력이라도 했다면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복된소식인 복음이 아니게 되죠.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인가? ( "죽어서 천국간다" 라는 사상은 매우 매우 잘못된 인본주의 종교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구원이란 우리를 인본주의에서 분리시켜 내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애굽에서 분리된 이스라엘로 표현했죠.(출애굽) 혹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분리된 롯의 가족으로도 나타냈죠. 이렇게 인본주의에서 분리시키려면 인본주의가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겠죠. 그 속성이 바로 귀신들린자, 눈 먼자, 말 못하는 자라는 속성입니다. 

 인본주의는 신본주의와 반대의 개념입니다. 인간은 신본주의 즉, 하나님 기준으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기준으로 살겠다고 선악과를 통해 선언했죠. 그래서 이때부터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내 기준, 혹은 인류의 기준)이 전부 인본주의입니다. 

 이런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상태가 바로 ‘귀신 들린 자’ 와 같다는 것이죠. 제 정신의 상태인 신본주의 상태를 벗어나 사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눈 먼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말 못하는 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말씀인 '복음'을 입으로 낼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처음 불려졌을 때 그는 3일간 눈이 멀게 되죠.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아시겠죠? 즉, "바울아~~ (그 때는 사울이었으니 사울아~~) 지금 너의 상태가 바로 그 눈먼 상태이다."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의 회심에 꼭 필요하긴 했지만 바울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왕이라고 칭합니다. 즉, 사탄의 왕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논리가 맞습니다. 즉, 사탄의 나라에 왕와 부하들이 있는데 그 왕이 부하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논리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아셔야합니다. 예수님은 이 당시 바리새인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이 글을 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이 바라새인의 ‘사탄의 나라’의 논리를 끌고 와서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싶은 것은 “인본주의에 대한 심판은 절대 인본주의 내에서 스스로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살기 힘들어진 나라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어떤 ‘정당’이나 ‘인물’이 나서서 기존의 ‘정당’과 ‘인물’을 심판하고 다른 정치를 한다고 해도 이것은 ‘악’이 없어지고 ‘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본주의 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심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태를 오늘 말씀에서 ‘너희의 아들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한 나라의 정당들이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서로 물고 뜯고 하면서 서로에게 심판을 하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되죠. 이것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대한 영적해석입니다. TV에서 이것을 보면서 한쪽 정당의 편에 서지 마시고  악과 악이 서로 심판하지만 결코 저런 것으로는 인본주의 탑이 선한 탑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결국~~ 예수님 밖에 없구나’라는 방향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정당도, 그 어떤 시스템으로도 안됩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나온 해와 달과 별의 1/3이 땅에 떨어진다는 말씀이 바로 이 부분을 가리키죠. 인본주의에서 우러러 보는 세력들을 이 땅에 떨구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통령도 구속되고 역사 속의 제국들도 망하게 되죠. 그런데 왜 전부가 아니라 1/3일까요? 선택받은 자 때문입니다. 이 자들, 이 정당들, 이 제국들을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자들이 심판당하는 것을 보고 선택된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심판에 자비를 두신 것입니다. 즉, 1/3은 자비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말씀이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역하면 “성령의 힘으로는 인본주의라는 악을 쫓아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본주의에 속한 자들과 분리된 자들로 구분이 되는데 이때 인본주의에서 분리된 자들에게는 천국이 임하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 복음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죠? 이것은 인간의 이해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그 지역(천국에 속한 자)사람들만 알아들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생각하세요. 결국 인간의 결핍(한나의 아들)으로 기도를 시작했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결핍(예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아듣고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죠.(복음을 못 알아듣는 목사는 아직도 이 한나의 기도를 "기도 열심히 하면 아들 낳게 해준다."고 설교를 합니다. -- 이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  모든 기도는 다 내려놓으시고 오직 복음을 알아 듣는 자가 될 수 있도록만 기도하세요. 그리고 성경에서, 자연에서, 역사에서, 인생에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찾아보세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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