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오늘 말씀도 인본주의와 복음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촛점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강한 자를 결박 + 세간을 강탈 + 그 집을 강탈'하는 조금은 이상한 비유로 표현 하셨죠. 그 이유는 이 비유가 가리키는 핵심이 인본주의과 복음의 진영 둘 다 해당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인본주의에 복음이 절대 섞일 수가 없고, 복음의 진영 쪽에서도 절대 인본주의가 섞일 수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섞일 수가 없는 것을 '거룩' 혹은 '청결'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바로 내가 복음의 진영 쪽에 속해 있으니 너희도 복음의 진영에만 머물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을 예수님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시죠.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선언하시므로 말미암아 인본주의와 복음의 중간형태의 믿음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죠. 즉, 인본주의적 성공과 복음을 동시에 갖게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성령을 모독하는 것,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실까요? 그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16:8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서 책망이라는 것은 '설교'를 뜻합니다. 즉,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 '설교'의 본 뜻은 성도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성도의 옛자아를 책망하여 다시 복음을 알게 하는 것이죠. 성령이 설교하시는 '죄, 의, 심판' 은 바로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가 있죠.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확한 정의입니다.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이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부하면, 즉, 성령의 가르침을 거부하면 복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죠. 그래서 사하심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라고 하시면서 '열매'에 관해서 말씀하시죠. 지금의 현대교회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열매를 행위의 결과로 해석을 하죠, 절대 아닙니다. 열매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령의 9가지 열매'에 관하여 해석을 해보죠.
우리가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아서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등등을 잘 맺어라. 라고 해석을 하면 '땡'입니다. 이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는 것이며 그 열매의 정체는 예수님입니다. 조금 의역을 해보면 성령께서 선택된 자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주시고 열매인 예수님을 맺게(믿게)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예수님의 방향에서 풀어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 희락, 오래참음 등등의 9가지 열매의 특성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 모독'은 사하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열매를 맺게하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 거역(모독)하게 되면 유일한 구원의 조건인 예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는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은혜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여기서 독사의 자식들은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인본주의는 모두 악하다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바로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알려주시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 보도록 만들죠. 그것을 '열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자들을 계속 자기가 독사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선한 열매'를 스스로의 행위로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그들은 그 행위로 하나님께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에 절대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죠. 하나님의 기준은 바로 '마음에 여자를 품기만 해도 간음'일 정도로 지엄하시죠. 말씀은 그것을 행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완벽하게 행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라고(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본주의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이 오셔야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인생이, 그분의 십자가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라는 포맷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모순되어 보이던 스토리가 전부 통일되어 완벽한 구성을 이룹니다. 놀랍죠.
그런데 인본주의자들은 본인들이 선하여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력(행위)을 하죠. 이것을 요한 계시록에서는 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에서 하나님이 따지실 것이라고 하죠. 그러나 복음은 '나의 무익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선하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고단수의 사기'를 치지 않고 예수의 은혜로 나의 죄를 덮는 것이죠. 정확하게 다시 표현하면 예수님이 이미 나의 죄를 덮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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