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2:43:-45(21.11.10.수)

은혜바라기 2021. 11. 10. 08:59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더러운 귀신'과 '더 악한 귀신 일곱'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는 말씀은 인본주의 내의 '악과 선'을 말합니다. 즉, 인본주의 '악'이 더러운 한마리 귀신이고 인본주의 '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입니다. 여기서 악한 귀신 일곱이라는 것은 '완벽한 악'을 뜻합니다. 조금 어렵죠. 예를 들어볼까요? 
 
 늘 술먹고 다른 이를 때리던 사람이 어느날 교회에 와서 반성(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을 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고 할 때 더러운 귀신 한마리가 나갔다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후 교회에 열심히 봉사, 헌금, 충성하면서 "난 선을 행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이것을 악한 귀신 일곱이라고 표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셔야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 인류의 역사 중에 왜 바리새인의 시대에 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바리새인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성경은 복음의 시각에서 표현을 하기 때문에 바리새인을 나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바리새인은 우리 인본주의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휼륭한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몇일씩 금식하고, 그 금식해서 모은 돈으로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목숨을 걸고 성전을 지켜냈으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말씀 지키기에 힘쓴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가장 휼륭한 사람을 상상해보세요. 그 사람의 10배 정도 휼륭한 사람들이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신의 행위가 휼륭해 질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필요성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한 죄의 정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을 멀리하고 죄인, 새리, 창녀와 늘 같이 다니셨죠. 복음이 왜 우리 사회(인본주의)와 역설이 되는가를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사람이 살인하고, 때리고, 거짓말하고, 간음하고 도둑질을 할 때 그의 마음 속에는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필요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상태를 한 마리의 귀신이 있는 상태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봉사, 헌금, 충성을 통하여 내가 이정도면 완벽한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면 예수님의 필요성은 없어지고 본인의 행위에 묶여서 이 착한 행위에 더욱 노력하게 되죠. 이들이 바리새인이었죠. 자신의 행위를 믿게되는 것. 이것을 우상이라고도 합니다. 이 행위가 더 휼륭해 질 수록, 더 많은 박수를 받을 수록 예수님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상태를 일곱 마리의 귀신이 있는 상태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상태를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하셨죠.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예수님은 기독교가 미래에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즉, 좋은 신앙, 건강한 기독교 공동체, 휼륭한 인격의 목사,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교회를 예수님 보다 더 추구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죠. 그래서 그것을 정확하게 경고하시기 위해서 그 오랜 인류의 역사 중에 하필 "바리새인"의 시대에 오신 것입니다. 가장 휼륭한 종교인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말이죠. 그것도 지금 처럼 가짜 인격이 판을 치는 지도자들이 아닌 진짜 착한 행위의 끝판왕들인 바리새인의 시대에 말이죠. 그리고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욕을 하시는 장면을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죠. 이 역설을 정말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복음을 한 마디로 말하면 "탈출(분리)"입니다. 출애굽이죠. 성경에서 책 한권을 소비해가면서 "출애굽(인본주의 탈출)"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를 아셔야합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 즉 교회 밖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바로 교회의 중심이었던 사람들이었죠. 즉, 정말 정말 역설이긴한데, 복음에 눈을 뜨려면 필수적으로 교회를 탈출하셔야합니다. 나를 부인해야합니다. 교회를 부인해야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십자가)를 따라야하죠. 

 

 어렵죠? 그래서 복음은 이해와 설득이 아닙니다. 오직 눈을 뜨는 것이 전부입니다. 눈먼 자에게 빨간색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절대 빨간색의 실체를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눈을 뜨고 그 빨간색을 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 제가 눈을 떠서 예수님을 보게 해주시고, 복음을 알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만 하시고 오직 그 시각으로 성경과 인생 그리고 역사와 자연을 살펴보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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