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시절에 부모님께 순종하였다고 표기되어있습니다. 오늘의 말씀과 완전히 모순 되죠. 그래서 성경은 복음의 눈으로 읽지 않으면 엉뚱한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복음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수학을 하나 하나 배워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답안지'를 먼저 받아 놓고 그 문제를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답안지를 받아야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것을 "눈을 뜬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가장 많이 베푸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쉬지말고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바로 '항복'입니다. 즉, '전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 그래서 두 손을 드는 '항복'의 행위가 기도입니다.
반대로,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죄인들은 '내가 어떻해 해서라도 이 문제를 스스로 풀어 볼 것이다.'라고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스스로 그것을 절대 풀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구약성경이 말하는 전부입니다.
신학자들도 오늘의 말씀 해석을 매우 어려워하죠.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보면 오늘의 말씀은 사실 해석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운 문장입니다. 복음의 본질 차체가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 복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여 놓으신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인본주의 관계로써의 부모자식 관계에만 매달려 있다면 진짜 본질을 놓치는 것이죠.
(( 진짜 복음을 알게 된다면 부모에게 오직 효도만 하는 자식의 행위는 진짜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정말 이 괄호 안의 문장을 이해하시는 분이 있다면 복음에 완전히 눈을 뜬 분이 될 것이지만 아마도 99%는 이 글을 오해하실 가능성이 크죠. 저 조차도 이 괄호의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받더라도 복음의 핵심을 단 한 분에게라도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조금 깊게 들어가 봅니다. 부모에게 하는 효도는 이 세상에서 너무 완벽한 선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들여다 볼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필요성을 느낄 가능성이 적다는 것입니다.
연예인 중에서 우연히 돈을 많이 얻게 된 어떤 자식이 그 돈으로 부모께 좋은 집, 좋은 차를 사주고 메스콤에서 그것을 떠들어 대고 박수쳐 주는 것을 우리는 가끔 목격하죠. 그는 스스로 가장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즉, "이 정도면 난 잘하고 있어"에 묶여 버리죠.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 반대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자식이 아무리 큰 집, 큰 차를 부모에게 사준다해도 1/100 도 부모의 은혜를 보상하지 못합니다. 택도 없죠. 절대, 어떠한 자식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식은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하나님은 은혜를 갚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효도를 잘 해서 부모를 잘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식과 늘 부모를 속 섞이면서도 마음으로는 그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자식 중에 어떤 것이 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세요? -- 이 괄호는 별도로 묵상해 보세요 ))
오늘의 말씀을 가지고 이단들은 신앙을 위해서 진짜로 부모를 버리라고 하는 곳도 있죠. 전통교회는 조금 양보해서 신앙을 위해 부모와 자식보다 예배를 먼저 생각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주신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하죠. 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해는 합니다. 왜냐하면 인본주의 해석으로는 이 본문을 해석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족 관계를 끄집어 내어서 설명한 에피소드입니다.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 땅(인본주의)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만들어 놓았더니 너희는 그 관계에만 매달려있구나. 그러면 안된다. 그 안에서 복음의 본질을 보려무나." 라는 것입니다. 그 본질의 진짜 실체는 "부모된 하나님과 자녀된 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그리고 예수님과 그 지체의 관계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 세상이 단지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죠. 오늘은 조금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로 이 세상의 실체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끝을 맺죠.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가장 최소단위를 원소라고 합니다. 이 원소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죠. 이 원소들이 모여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물체가 만들어지고 이 물체들이 모여 우주가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이 원자핵과 원자는 원소의 규모에 비해 매우 작습니다. 어느 정도로 작은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원소를 이루는 대부분은 원자핵과 원자가 아니라 '빈 공간'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로는 만약 원소내의 공간(nothing)를 제외시키고 원자핵과 원자만을 딱 붙여서 밀도를 높이면 이 우주는 우리의 손 한줌의 흙의 부피도 안될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원자핵과 원자의 속도 아마 대부분이 공간일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것까지 감안해서 밀도를 높여서 이 우주를 압축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이 될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즉, 우주를 압축하면 모래 한알도 안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학을 통해 우리가 이것을 알도록 허락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님' 즉, 텅빈 것, 즉 티끌입니다. 이 온 우주는 그 형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텅빈 공간에 어떠한 힘과 질서가 부여되어서 움직이는 것이죠. 그 어떠한 힘과 질서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본질은 바로 예수님이시죠. 이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어머니까지 부인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자들은 거듭난 자라고 하죠. 이것을 알게 된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