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3:1-9(21.11.12.금)

은혜바라기 2021. 11. 12. 09:04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씨뿌리는 비유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비유와 다르게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별도로 풀어서 설명하시는 것이죠. 그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예수님은 복음을 비유로만 말씀하신다고 했고 그 이유는 선택받은 자만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비유를 풀어서 설명하셨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제자들에게만 설명하신 후 왜 "아무한테도 말하지마"라고 하셨을까요? 정답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풀어 설명한 부분도 사실은 '비유'입니다. 즉, 그 해석 자체에도 복음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죠.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린 이 세가지는 '인본주의'에 말씀이 뿌려지면 생겨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말씀을 들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좋은 땅은 우리가 아닙니다. 좋은 땅은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는 '인자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씨'도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는 '말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완전하게 깨닫는 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되는(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게 되면 좋은 땅이신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가 행한 것으로 여김받게 되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이죠. 이것을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거나 혹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은 법과 양심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죠. 그러나 오늘의 말씀과 같이 길가, 돌밭, 가시떨기의 현상을 겪죠. 어떤 누구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된 자들이 바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그 자들은 자기가 좋은 땅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좋은 땅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 믿게 되죠.

 

 반대로 절대 좋은 땅이 될 수가 없는데 길가, 돌밭, 가시떨기 땅에서 좋은 땅으로 될 수 있다고 믿고 스스로 노력 하는 자들은 버림받은 자들이 됩니다. 인본주의종교의 가르침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가 되지 말고 좋은 땅이 되자, 혹은 좋은 땅이 되도록 노력하자, 혹은 좋은 땅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그 마음만은 받아주신다는 잘못된 해석을 하죠. 이것은 인본주의 기독교 뿐 아니라 불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에도 다 있는 것입니다. 
 
 땅은 태어나면서 부터 그 형태가 정해져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노력해서 다른 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 다 나쁜 땅입니다. 그 나쁜 땅을 변화시켜 좋은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고, 착각하는 것이 인본주의식 바벨탑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라고 노력을 시키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라고, 건강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면 행복해지고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좋은 땅이 되거나 좋은 땅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바벨탑의 꼭대기를 갈망하죠. 그러나 그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거기서 떨어지면 안되는데"라는 두려움만 가득 차있죠. 

 

 그러나 복음이란 우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오직 좋은 땅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죠. 그렇게 믿는 자들의 마음에 진짜 말씀의 본질인 복음이 심어지면서 씨앗인 예수님이 심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예수님을 믿는것)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씨앗인 말씀의 본질인 예수님이 심어진 자들은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렇게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참 기독교는 우리가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그것을 믿고 내가 부인될 때, 나를 덮어주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것. 이것이 참 믿음 참 신앙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화'란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 휼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리새인 화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 성화'란 내가 성화될 수 없는 존재임을 계속적으로 깨달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안되는구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성화 될 수 없는 자임을 알게 된 '공간과 시간' 만큼 내가 부인되고 '예수님'이 그 영역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가나안의 영토확장 전쟁(여리고성, 아이성 등등)이 바로 이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복음을 알게 됨)의 확장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성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이 좋다, 나쁜다. 요즘 믿음이 조금 후퇴했어, 요즘 믿음이 자랐어.' 라는 말은 전부 잘못된 말입니다. 믿음은 오직 '과정'과 '확장'만 있을 뿐입니다. 성령께서 광야(고된 인생)에서 성도를 견인하여 끌고 나가는 것을 '과정'이라고 하고 그 과정 중에 우리가 도저히 '성화'돨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영역을 예수님께 조금씩 계속 내어주는 것을 '확장'이라고 하죠. 완벽한 가나안 정복, 즉, 완벽하게 '복음을 알게 됨' 즉, '완벽한 믿음'은 바로 나의 전 인생의 시간과 공간을 전부 예수님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매우 힘들죠.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가나안도 결국 전부 정복하지 못한 것으로 매듭을 짓죠. 그런데 이렇게 전부 정복하지 못한 것으로 매듭을 짓는 것 또한 숨겨진 복음입니다. 즉, 믿음, 곧, 복음을 알게 되는 것 조차 인간이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알게 되신 분은 이제 '여리고성' 한개 정도를 예수님께 내어드린 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깊이는 끝도 없을 정도로 깊죠. 
 
끝. 

 

 P.S 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복음의 눈을 뜨신 분들은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 그러나 이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마시고  오직 " 마음이 가난한 자"를 중심으로 전파해 주세요.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 버립니다.

 복음에 눈을 뜨고 이 글을 묵상하는 분들은 주위에 이런 분들이 눈에 들어 온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반대로 마음이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감당하기 어려운 박해를 받게 됩니다.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란 사회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그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치만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가 충돌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을 살인(부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여러분을 박해(오해)하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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