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3:31-32(21.11.16.화)

은혜바라기 2021. 11. 16. 09:10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자기 밭'이라는 표현 중 '자기'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자기'란 '예정된'이라는 뜻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의 개념이기도 하고, '불가항력적 은혜'의 개념이기도 하고, '제한 속죄'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 세가지는 사실 장로교의 대표적인 5교리 중 3가지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다는 것과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 은혜를 내리는 경우 그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과 이런 구원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밭은 '예수님의 품'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덮혀있는 죄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겨자 씨는 매우 작죠. 실제 겨자씨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작은 것이 '예수님'입니다. 작다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죄인된 모습으로 오신 것을 상대적으로 '가장 작은 것으로 오셨다.' 라고 표현하신 것이죠.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라는 비유도 하시죠. 이것도 같은 말입니다. 천국의 가장 큰 자는 결국 예수님 뿐이 없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성경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왜? 성경은 예수님을 작은 자, 볼품없는 자로 표현을 할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입니다. 인본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예수님은 볼품이 없는 작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닌데~~~!!!  교회에서 예수님을 신으로 믿고 기도하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한낱 우상의 자리에 놓고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의 위치로 전락시킨 것 뿐입니다. 즉, 나 > 내 소원 > 예수님 의 순서가 됩니다. 이슬람에서 순교를 많이 하죠. 그들이 일면 알라신을 위해 죽는 것 같이 보여도 그 이면에는 나> 내가 갈 천국 > 알라신 의 순서가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순교하면 72명의 처녀를 천국에서 할당받아 영원히 행복하게 살거라는 교육을 받죠. 

 

 교회도 천국을 가기 위해(혹은 다른 '내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척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나라는 존재보다 한참 밑에 있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하는 것이죠. 복음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 대주제가 "나를 부인하고"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은 그 첫 관문이 "나의 가치 붕괴"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의 모든 것이 가치없음 즉, '가난했구나!'를 알게 되죠. 교회에 다니면서 이 차이를 알게 된 자들이 소수의 숫자로 발견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복음을 알게 되는 자들은 매우 소수의 무리라고 하죠. 여러분이 이 소수의 무리에 속하기를 바랍니다. 

 

 이 후 성경은 우리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작은 겨자씨가 나중에 큰 나무가 된다는 뜻으로 즉, 시간이 경과하면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죠. 그러나 이것은 시간의 순서가 아닙니다. 의미적 순서입니다. 즉, 예수님을 처음 대하는 우리는 예수님을 볼품없는 도구 정도로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 중 예수님의 품에 거하게 되는 자들은 그 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결국은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공중의 새는 '성전'을 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산 위에 지어져서 공중에 있는 것 같이 보이고  그곳에 새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공중의 새라고 하면 성전을 떠올리죠. 그리고 성전의 실체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 즉, 교회를 가리키는 표지판이며 이 교회가 천국의 구성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덮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즉, '예수님께서 덮는다.' 입니다. 우리는 인본주의의 삶을 통해 내가 절대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 인본주의 구조 내에 있는 것 즉 선악과 구조에 들어 있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이 죄의 구조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오직 예수님께서 덮어 주셔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기된 자들은 이 인본주의 내에서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성과를 내려고 하죠. 자기증명의 기회로 삼죠. 자기가 꿈꾸는 것을 잡으려하죠. 선악과를 먹은 죄인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리를 잡으려 기대합니다. 더 큰 행복(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을 잡으려 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기준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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