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어제의 묵상과 같은 구조입니다. 의미도 같죠. 즉,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즉, 선택받은 나의 관점에서 값진 진주는 예수님(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관점에서 값지 진주는 '선택받은 나'입니다.
좀 더 확장해서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선택받은 나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복음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면 이 땅에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즉, "나를 부인하고" 오직 복음의 세상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견인하신다는 것이죠. 결코 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그가 태초에 선택한 신부를 찾게 되면, 즉 선택받은 나를 찾게 되면 십자가를 통해 나를 구원하셔서 예수님의 신부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십자가란 예수님께서 나를 얻는 댓가로 모든 것을 버리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복음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하기에 매우 좋은 구절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나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것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는 것을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열매와 나의 열매가 공유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나는 한몸이 되는 것이죠. 이것을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치시고 견인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나로 하여금 복음을 알게 하여(믿게하여)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하신다고 했죠. 그렇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을 팔아서' 복음의 세상에 집중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모든 것을 판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게 해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즉, 성령께서 이렇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무엇을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바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즉 "인본주의 가치"를 말합니다. 돈, 건강, 명예, 지위, 자녀, 가족, 나라, 신앙, 헌금, 봉사 등등 그 어떤 것이든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합니다. 복음의 과정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표지판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더블 괄호 안에 넣어서 말씀드릴께요. ((필요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 저는 어릴 때 부터 항상 '가치 있는 일'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는 그 증상이 유독 심했죠.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를 스스로 따져 물었죠. 그 가치가 클 수록 그 일에 집중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부터 그 무엇을 하던지 전부 '가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올바로 알려줄 사람도 없었죠. 기껏 해바야 학교 잘 다니고, 교회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정도죠. 그 본질이 전부 가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그 모든 것이 잘 될 리가 없었죠.
이 후 다행스럽게도 휼륭한 전도사님을 만나서 그 가치를 교회에 쏟아 붓었습니다. 공부도 다시 시작해서 신학, 선교, 목회 등의 가치를 품었죠. 그런데 그것도 결국 가치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는 3-5년에 한번씩 구름기둥 옮기듯 저의 삶의 환경을 완전히 옮겨 주시면서 그 안에서 그 어떤 것도 '가치없음'을 점점 더 알게 하셨습니다.
이런 삶은 매우 힘듭니다. 의미없는 땅을 파고 다시 덮는 것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그 때 마다 '결국 예수님 밖에 없구나'라는 거대한 음성은 매일 들렸죠. 저는 참 신기하게도 부끄러운 죄를 짓는 시점에도 '예수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렸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에는 매우 생경했죠.
이런 삶이 오래 되면서 이 삶 자체가 복음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알게 된 영역만큼 성경도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렇게 성경이 단 한가지 주제로 통일되게 해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는 나의 인생도 전부 이해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 자연의 모든 법칙, 천지창조까지 그 모든 것도 다 복음을 설명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때 부터 복음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세세한 법칙까지 다 알아듣는 천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정도는 이해하고 들으시고 있으시죠?)
지금의 삶에서 제가 원하는 삶은 딱 한가지 뿐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와 복음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수님도 이런 삶을 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복음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이것을 잘 분석해 보니 그게 바로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나의 이 꿈이 결국 예수님의 꿈이 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은 결국 이 세상에서 행복을 절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아직 복음의 진영에 한발자국도 들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은 심지어 가족들이 웃고 떠들고 단란한 미래를 이야기할 때 조차 복음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오직 예수님의 가치안에서만 평강이라는 행복을 알 수 있게 지은 바된 것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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