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에 대한 마지막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죠. 모르시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과 대답도 그 당시 제자들을 위한 것이 촛점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예수님의 지체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후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 "라고 답하죠.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과 대답에서 무엇을 설명하고 싶은 것일까요?
사도행전2장의 성령강림 전까지는 그 누구도 복음의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모두 다 도망하죠.) 즉, 자기의 머리로 깨달아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제자들은 깨달았다고 하죠.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우리가 논리적으로도 복음을 이해했다고 착각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너희가 깨닫고 있다고 생각하는 복음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전파자요 연결자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 우로 집을 세우는, 즉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당시의 서기관은 말씀의 겉모양인 율법에만 매여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만이 예수님의 지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즉, 율법에 매인것이 아닌 말씀의 본질인 복음을 알아버린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새것(복음)과 옛것(율법)으로 다시 설명하십니다.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는 말씀에서 새것과 옛것은 율법과 복음(구약과 신약)을 의미합니다. 이 두가지는 같은 곳간에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새것과 옛것을 "구분하는 것" 입니다. 즉, 오늘도 결국 주제는 "구분(분리)"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인본주의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복음을 구분하여 알아 들을 수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게 천국은 어떤 곳인가?라고 묻게 되면 '아름다운 장소'를 떠올리지만 그것은 완전한 인본주의적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모든 비유를 시종일관 인본주의에서 분리하여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으로, 즉 관계에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땅으로 표현되는 곳간에서는 인본주의와 같이 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말씀하시죠.
우리가 흰색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검은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가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역활이죠. '부모를 사랑하라'는 인본주의 선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거역하다'가 악이라는 것을 알죠.
이렇게 인본주의에서 선악 개념을 알게 하시는 이유는 그것을 기초로하여 그 인본주의 전체가 '악'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유는 그 인본주의와 분리되어 있는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선이기 때문입니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선, '살인하지 않는 것'이 선이 맞지만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그것과 타협합니다. 이 '타협된 순간'의 정체가 정확하게 인본주의 핵심이면서 악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께 도달하기를 바라시지만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나서 '인본주의 종교', '인본주의 규칙'이라는 바벨탑을 만들어서 지킬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바꾸어 버린 후 그것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살아가죠. 이것이 하나님이 꼬집는 진정한 '악'입니다. 하나님과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이 절정을 이룬 자들이 바리새인이었죠.
부모에게 누가 봐도 박수 받을 만한 효도라는 것을 하면(자주 찾아가기, 용돈많이 드리기, 집.차 사드리기, 병원비 완벽하게 제공하기, 치매에 걸려도 끝까지 보살피기 등등의 인본주의 바벨탑이 세워놓은 효도라는 규칙) 그것을 통해 자신이 '괜찮은 자식'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죠. 절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자녀는 절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하지말라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이해가 안되나요? 아니면 인정이 안되나요? 그것보세요!!!! 인본주의의 바벨탑이 세워 놓은 규칙이 오히려 성경이 말한 바 보다 더 위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죠. "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조금 쉬운 '살인하지 말라'는 것으로 설명드리죠. 이것을 듣는 분들 중에서 정말로 사람을 죽인 자가 있을까요? 없겠죠?? 그래서 이 '살인하지 말라'는 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겠죠. 성경말씀을 보죠.
"요일3: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다 살인하는 자니"
이 성경 구절을 왠만한 기독교인이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인간의 규칙, 즉 인본주의, 즉 바벨탑에 묶여 있는 우리는 '말씀의 저울'에 올라가 있기 않고 '인본주의 저울'에 올라가 있죠. 그래서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은 이 말씀의 저울에 올라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이 살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살인하죠. 그래서 내가 도저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유일한 통로이자 유일한 구원자인 예수님을 인식 하게 되죠. 이 때서야 진짜 예수님이 보이게 됩니다.
" 항상 말씀의 저울에 올라 서세요 그리고 고민하세요." 이 고민을 '쉬지말고 기도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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