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4:22-23(21.11.29.월)

은혜바라기 2021. 11. 29. 08:5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즉시', '재촉하사',  '배를 타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죠.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복음을 설명하셨지만 인본주의에 있는 자들은 이것을 '잘사는 것'과 '신비주의'로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에서 '제자들'을 피난 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즉시', '재촉하사' 라는 두 단어를 중복시키므로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요소인지를 설명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의 힘으로 '잘사는 것', '명예롭게 사는 것', '인격있게 사는 것', '가치있게 사는 것'을 위해 교회를 다니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즉시'피하십니다. 
 
 이 후에 예수님 본인께서도 무리를 보내신 후에 따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그 분의 행동을 통해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기도란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 '따로', '산에 올라가신, 이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인본주의와의 분리와 단절을 뜻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잠시 묵상해보죠. 우리의 모든 기도는 다 엉터리입니다. 우리는 사실 기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기도는 오직 예수님(성령님)만 할 수 있는 독점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된 전적타락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는 성경 말씀이 여기 해당됩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유산을 받을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죠.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란 '내가 필요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나의 기준을 예수님의 기준(이름)에 마추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기도하실까?'라는 최종 검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복음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단 한마디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모든 생각은 자신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되어서 하는 기도(예수님기준)가 되어야 하므로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성 기도는 예수님이라도 기도하실꺼야.' 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그말은 100% 정답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를 죄(인본주의)에서 분리시켜 자신의 신부로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서 병을 고치자' 라는 중보성 단체기도가 있다고 해보죠. 이 병자들의 병이 낫는 것이 과연 복음을 설명하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몇 년 더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을 설명하는가? 이 둘 중 어디에 촛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을 병들어 죽게 만드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에 도움이 되신다고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인간이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을 알기에 그 고통에 반응하고, 혹은 그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하여 고민 하게 되죠. 그러면서 구원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서 예수님을 인식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죠.

 

 영원히 건강하게 이 땅에 묶여서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복음을 알게 되어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땅이 살만한, 즉 아직 소소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직은 이 땅에서 '은혜와 긍휼'을 거두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한 사람도 알아 듣지 못하는 시대가 오면 그 때는 이 땅에서 은혜를 완벽하게 거두어 들이시겠죠. 그 때의 땅을 바로 '지옥'이라고 합니다. ( 즉, 이 땅에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남아 있는 이유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 마지막 촛불일 수가 있죠. )

 

 성경에서 기도하여 병자를 고치신 이유는 그것을 통해 복음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유 단 하나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인본주의라는 죄(병)에서 고쳐짐(구원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교회의 양적팽창을 위해 이용하는 목사들이 많죠. 완벽한 이단입니다.  


  결론을 맺죠. 기도는 내가 예수님이 되어서(기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는 결국 복음과 구원에 관한 기도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그것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복음은 필연적으로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통해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무리(세상)와 떨어져', '따로', '배타고 물을 건너', '산으로 올라가' 등으로 매우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여 설명하신 것입니다. 
 

끝. 

'마태복음(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14:28-33(21.12.01.수)  (0) 2021.12.01
마14:24-27(21.11.30.화)  (0) 2021.11.30
마14:14-21(21.11.26.금)  (0) 2021.11.26
마14:1-13(21.11.25.목)  (0) 2021.11.25
마13:53-58(21.11.24.수)  (0) 20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