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7:1-8(21.12.20.월)

은혜바라기 2021. 12. 20. 09:08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은 매우 잘못된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대부분 유교, 불교, 드라마, 즉 인본주의 및 인본주의 종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국을 '영원히 행복한 장소'의 개념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영원히'라는 것은 시간이고 '장소'라는 것은 공간이죠. 그러나 영적 세상인 천국은 창조물인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없는 곳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올바른 '천국의 정체성'을 알려줍니다. 예수께서 제자3명을 데리고 올라가죠. 3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를 가리키는 표지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산은 성전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죠. 전부 천국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계속 암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변형되시죠.  완벽하게 천국을 시각적으로 설명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천국에서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죠. 오직 그분에게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천국은 어두움이 존재하지 않죠.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은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빛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그 상징물들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모세 그리고 엘리야'와 함께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천국을 시각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모세와 엘리야를 이 땅에 잠시 끌어 내렸죠. 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있는 것, 즉 교회와 예수님이 함께하는 이 관계를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그대로 시각화 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촛점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있기'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설명용 소품입니다. 이것을 다음절에서 제자들의 실수를 통해 설명합니다. 
 
  제자들은 큰 실수를 저질르죠. 천국의 정체성인 '예수와 함께 있기'를 본 것이 아니라  '영웅 세사람이 좋은 곳에 있다'라는 인본주의적 천국관으로 이 장면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가 좋구나!'라고 외치며 이 영웅 세사람을 위해서 초막3개를 짓고 그 세사람을 동일한 선상에 두고 그 초막 하나 하나를 세사람에게 골고루 주겠다고 하죠. 즉, '장소'의 개념이 초막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즉, 장소의 개념에 그 세분을 가두려는 것이죠. 우리도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천국하면 예수님을 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행복한 장소에 있는 나'를 떠올리죠. 
 
 이 때 하나님이 바로잡아 주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시면서 오직 예수님께만 촛점을 마추라고 하시죠. 이 후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니 그때서야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되죠.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다" 이 말이 곧 천국의 정의이며 결론입니다. 이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천국은 내(모세,엘리야)가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게 되는 곳입니다. 즉,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인데 나와 예수님의 관계가 100%가 되어 오직 예수님만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남녀의 관계'를 창조해 놓으셨죠.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루종일 그 사람만 생각이 나는 경험을 해 보셨나요?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온통 머리속에 그 사람 생각 뿐이죠. 이런 경험을 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님과 나의 관계' 즉, 천국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행전에서도 한번 더 보여주시죠.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고 돌에 맞아 죽기 직전에 하늘을 보니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이 장면이 정확하게 천국입니다.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천국의 개념을 정반대의 지옥의 개념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99%의 성도가 그렇다고 봅니다. 1%성도만이 모순을 느끼며 '진짜 천국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뿐이죠. 아무도, 어떠한 목사도, 어떠한 교사도 복음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쳐 주지못합니다. 전부 다 맹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대보다 더 지독한 어두움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라고 지금 교회의 문을 닫으시는 것을 분별하셔야합니다. ( 복음의 측면에서 보면 교회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심한 어두움은 교회가 인본주의 꼭대기를 추구하는 것, 즉 바리새인화 되는 것, 즉 인격적인 교인만들기, 잘살고 행복한 교인만들기, 부흥되는 교회만들기입니다. )

 

 그러나 복음에 눈을 뜬 분들은 천국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쉽습니다.  천국은 '내가 영원히 행복해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과 실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것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복음을 억지로 푸는 자들은 이것조차 '예수님만 보이니 내가 행복하더라' 라는 식으로 이해를 할 수는 있겠죠. 이것을 니고데모식 교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조차 나의 신앙을 위해 이해하는 자들을 말하죠.  ) 

 

 복음이란 이 땅에서 '나의 삶'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더 끔직하죠. 돈을 벌고, 더 나은 정치를 쫓고, 더 나은 지위. 명예. 영광을 쫓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끔찍한지를 알게 되죠. 결국 '나'라는 존재, 즉 '인간'이라는 존재, 즉 '인본주의'라는 존재의 끔찍함을 알게 되죠. 나는, 인간은, 인류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자들이 소수 생겨납니다. 그런 자들만이 천국에서 내가 나를 보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왜 천국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 자들만이 '오직 예수'의 이 '오직'이라는 두 음절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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