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7:9-13(21.12.21.화)

은혜바라기 2021. 12. 21. 09:29

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어제 본문의 에피소드는 예수님께서 천국을 설명하기 위하여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게 천국을 연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의 모양을 주님의 부활전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시죠. 즉,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제하지 않은 천국은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복음을 알지 못하고 천국의 모양만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독소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종교든 천국의 개념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개념이 들어 있지 않은 '나의 천국'으로 전부 해석을 하죠. 그들이 말하는 천국의 개념은 복음의 측면에서는 지옥의 개념과 완벽하게 똑 같습니다.  

 

 지옥이란 땅(지) 묶일(옥) 입니다. 이 땅에 영원히 묶이는 것이죠. 이 땅이 주는 행복이라는 개념 즉,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자로, 영원히 사는 것이 이 땅, 더 정확하게는 인본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이고 그것을 죽어서도 영원히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천국' 복음의 입장에서는 '지옥'을  가리키죠. 성경은 이것을 '무저갱'이라고 합니다. 즉, 이 땅의 함정(구멍)이라는 말입니다. 그 함정은 한번 빠지면 절대 나올 수 없죠. 무시무시합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이 주는 행복(돈,건강,명예,인격,존경....)에 묶이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인해서 이것의 무가치함을 깨달아 예수님과 관계맺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여기에 매몰되어 '나는 죽어서도 이런 행복한 곳으로 가고 싶다(묶이고 싶다.)'를 갈망하다가 죽는 것, 즉 죽어서도 이 무가치한 곳으로 스스로 찾아 들어가는 모습을 성경은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무저갱'의 정확한 정의는 '절대 복음을 볼 수 없는 곳'입니다.

 

 신기하게도 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이 무저갱으로 성도들을 이끌고 있죠. 휼륭한 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행위로 인도하는 목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직 목사는 성도를 복음으로만 이끌어야만 합니다. 오직 목사는 우리가 휼륭하지 못하다. 절대 휼륭해 질 수가 없다. 우리는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만을 외치는 자여야 합니다. 재미가 없죠. 그래서 교회는 부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부를 찾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다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죠. 이것이 99마리 양보다 1마리의 양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의 정의입니다. 교회가 99마리를 위해서만 설교를 하고 프로그램을 짜다보니 그들 모두의 충족을 위해 누룩을 섞게 되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의 문을 닫는 이유입니다. 

 

 더 아프게 말씀드리면 교회는 인본주의적인 이유로 모이게 되지만 목사는 그들에게 복음을 말해서 교회를 축소(좋은고기와 나쁜고기를 갈라치기)시키는 작업을 하는 자입니다. 99명의 교인에게 욕(박해)을 먹고 1명의 교인을 찾게 되죠. 아닐껏 같죠? 이것의 첫 열매가 정확하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정확히 이렇게 하셨죠. 지금의 교회는 그냥 인간이 만든 종교단체일 뿐입니다. 이제는 목사가 되려는 자들 조차도 '목사가 되서 큰 교회 만들기'가 목표가 된 시점이죠. 그래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좋은 아빠 목사가 되자'를 외치는 시대가 왔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을 성도들이 동조하고 '돈까지 가져다 바치죠' 이것을 하나님이 만든 기독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왜 교회의 문을 닫고 계시는지 조금 아실 것 같지 않나요?

   

 오늘 말씀에서 왜 '엘리야가 먼저 와야하리라'고 할까요? 엘리야는 요한을 가리키죠. 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의 의미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했다'고 하죠. 즉, 예수님을 가리키는 모든 손가락들을 사람들은 진정으로 믿지 않았다라는 말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선지자, 사건, 말씀을 통해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 때도, 지금도 그 누구도 예수님을 스스로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종교적으로 믿는 예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부처를 믿습니다. 부처를 생각하면서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죠. 여기에서 부처만 빼고 예수로 바꿔치기한 것이 지금의 교회입니다. 전부 다 사람이 만든 종교, 즉 인본주의종교의 모습이죠. 하나님이 만든 참교회는 이런 형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우리가 믿게(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게 될까요? 복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복음의 스토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믿음은 능동태가 아닌 적극적 수동태입니다. 성령께서 적극적으로 나를 이끌고 가시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 세상의 종교와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복음의 진영으로 들어간 자들이 남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이 정확하게 '가나안'입니다. 즉, 젖과 꿀 즉, 말씀과 누룩을 경험하면서 복음의 앎을 확장해 가는 인생을 사는 것이죠. 여리고성에서는 오직 '하나님이 말씀으로만 모든 것을 승리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되어 복음의 앎을 더 확장해 나가고 그 다음 아이성에서는 '나의 뜻대로 해 보니 이 작은 아이성에서도 나는 패하고 절망하는구나~~ 역시 나는 완벽하게 무능력하구나~~ 역시 예수님 밖에 없구나~~~'를 알게 되어 복음의 앎을 더 확장해 나가죠. 복음의 진영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 시야가 복음을 알아가는 것에 마추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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