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맹인은 복음을 보지 못하는 자, (다리)저는 자들은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길은 예수이죠. 복음을 보지 못하고 예수를 알지 못하여 복음의 길을 걷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 이라는 표현입니다. 예수께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이용하셔서 복음을 가르치고 설명하시죠. 그런데 성경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이상한 일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은 말씀의 본질인 복음을 이해 못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성경은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촛점을 마추어서 비판을 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 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성경을 읽고 있는 독자(선택받은 자)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최종적으로 분리시켜야 할 것이 바로 '기독교 종교'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종교로 보는 관점, 말씀을 율법으로 보는 관점, 신앙을 행위로 보는 관점, 천국을 장소로 보는 관점 등등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예수님과 대제사장의 판단이 완벽하게 반대죠. 대제사장은 그들을 보고 노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다'라는 말씀으로 대꾸하시죠. 그런데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어린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어린아이의 뜻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를 뜻하고 자신이 그렇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또 다시 '그들을 떠나'라고 하시죠. 이 뜻은 인본주의에서 떠나는 것, 즉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계속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보이시는 행동이십니다. 즉, 기적을 보이신 장소, 말씀을 전하신 장소에서 사람들은 그 기적과 말씀을 통해 '잘살기'라는 목표로 모여 종교 활동을 하는 인본주의 종교를 형성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떠나시는 모습이시죠.
그들을 떠난 다음에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이 얼마나 복음을 통일성 있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베다니'라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인본주의 가치가 마음에 없는 자를 가리키죠. 재물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이 헤깔리는 분들을 위해 잠깐 예를 들어보죠.
어떤 부자가 돈과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그것이 주는 가치없음을 깨닫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될 수 입니다. 반대로 돈과 재물이 없는 가난한 자가 세상의 부자들을 보면서 그것의 가치를 부러워 하여 그 가치를 쫓게 되면 그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아닌 재물의 욕심이 가득한 자가 되겠죠. (당연히 '욕심을 버려라'가 촛점이 아닙니다. 초점은 복이 있는 자들은 마음의 가치가 없어지는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 성령께서 그렇게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방향성을 잘 잡으셔야합니다. 인간은 조금만 틈을 주면 다시 기준을 자신의 행위로 가져가려고 하죠.)
산상수훈의 첫 시작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합니다. 이때 복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원어로는 복이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복음의 사람이 되도록 선택받은 자들은 마음이 가난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은 이런 상태를 경험하죠. 복음을 알게 되면 실제로 '행복해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 때의 느낌은 온전히 나의 옛자아가 받는 느낌이죠.
세상 사람들은 재물이라는 가치로 마음을 채우고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명예와 인격 그리고 신앙행위라는 가치로 마음을 채우죠. 이 중에서 예수님은 명예와 인격 그리고 신앙행위라는 가치를 더 위험하게 보고 그것을 더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바리새인의 시대를 특정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리시는 분들은 그들에게서 떠나서 베다니로 가게 됩니다. 즉, 신앙생활, 종교생활이 주는 가치(종교,명예,신앙,행위,인기,인간관계)와 분리하여 마음을 가난하게 되여 '나의 가치없음, 나의 무능력함, 나의 죄됨'이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비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보입니다. 그 때서야 비로서 '예수님의 필요성'이 보이죠. 이것을 '위로', '평강', '천국'이라고 합니다.
끝.